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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 대통령이 쏘아올린 사시 부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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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로스쿨, 법조인 양성 루트로 문제 있는듯"
2009년 도입 로스쿨, '현대판 음서제' 논란…"'개천 용' 멸종"
"불투명한 입학과정·특정계층에 유리한 제도로 법조인 세습 고착"
"사시 부활은 문제 더 악화"…"로스쿨 교육의 질 정상화가 필요"

(서울=연합뉴스) 서윤호 인턴기자 = 사법시험(사시) 부활 논쟁이 재점화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에 대해 "법조인 양성 루트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는 (로스쿨 제도가 부적절하다는 문제 제기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고 말한 게 기폭제가 됐다.
로스쿨은 법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공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취지로 2009년 도입됐다. 수년간 사법시험에 매달리는 '고시 장수생'들이 이어지고 변호사 부족에 따른 국민의 법률서비스 접근성 제한에 대한 문제의식 등이 배경에 자리한다.
그러나 로스쿨 도입 16년간 사법시험을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가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음서제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신분을 우대해 관리를 등용하던 제도로, 양반가에서 관료 사회를 장악하는 데 악용됐다.

◇ 사법시험 2017년 폐지…로스쿨 25곳 설립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시행된 조선변호사시험을 시초로 하는 사법시험은 2011년까지는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2009년 로스쿨이 들어서며 2012년부터 변호사시험과 병존했던 사법시험은 2017년 합격자 55명 배출을 끝으로 완전히 폐지됐다.
사법시험은 60여년간 '개천에서 난 용'의 배출 통로가 되기도 했다. 계층 이동의 대표적인 사다리 기능을 해왔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만으로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까지 오른 노무현 전 대통령,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독지가 김장하 씨의 후원으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대행 등이 있다.
반면 9수생 등 '고시 낭인'도 쏟아지면서 사회적 낭비라는 지적도 따라다녔다.
사법시험 폐지로 한때 사시 준비생으로 가득찼던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 고시촌은 이제 사회 초년생과 일용직 노동자 등 저렴한 물가를 찾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현재 전국에는 로스쿨이 25곳 있다. 4년제 대학 학사 학위와 지원 당해 법학적성시험(LEET) 성적·공인어학시험 등의 정량평가, 자기소개서·면접 등의 정성평가를 결합해 선발한다.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은 약 87%였다. 올해 4월 진행된 제13회 변호사시험은 전체 응시자 대비 약 52%의 합격률을 기록했다. 변호사시험에 5회 응시해 탈락할 경우 더는 응시할 수 없다.
로스쿨이 설치되지 않은 대학에는 법학과 및 유사 학과가 존재한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4년제 대학에서 표준분류체계 소분류 코드에서 법학으로 분류된 학과는 총 61개로, 서울에서는 동국대·홍익대 등 11곳에 있다.

◇ "법조인 선발은 사회의 공정성과 신뢰의 문제"
법조계의 의견은 갈린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사법시험 부활 주장이 고개를 들자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정욱)는 지난달 27일 논평을 내고 "제도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발생시키는 해묵은 논쟁을 다시 할 것이 아니라 현행 로스쿨 운영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해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변협은 "로스쿨의 다면적 입학 전형을 통한 선발 방식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검증됐다"며 "해묵은 논쟁 대신 결원보충제 폐지·입학정원 준수를 통한 로스쿨 교육의 질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재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일 "로스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사법시험을 부활시키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로스쿨과 사법시험 제도가 병존한다면 빨리 사법시험을 치고 싶어하지 누가 로스쿨에 가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결국 시험에 나올 문제를 잘 외우는 사람을 중심으로 법조인이 배출되는 폐해가 반복될 것"이라며 "이론과 실무를 잘 교육받은 법률가를 만든다는 취지는 무색해진다"고 말했다.
반면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시험의 경우 어떤 학문적·사회적 배경을 두더라도 시험을 통과하면 법률가가 될 수 있었으나 로스쿨에서는 3년간 전업으로 공부하는 동안 학업 비용을 대기 힘든 가정 출신은 법률가가 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학부 교수는 "법조인은 사회적 영향력·직업 안정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할과 지위를 지닌다"며 "법조인을 어떻게 선발하느냐는 사회 전체의 공정성 및 신뢰와 직결된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신뢰의 기반이던 사법시험이라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선발제도를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며 도리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불투명한 입학 과정·특정 계층에 유리한 제도 설계로 법조인의 세습 구조가 고착되고 시험이 갖던 최소한의 형식적 평등마저 약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양한 전공 출신을 모집해 전문성 있는 법률가를 양성한다'는 취지와 달리 로스쿨이 고시학원화 되고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최윤철 건국대 로스쿨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로스쿨 도입 당시만 하더라도 로스쿨마다 부동산법·지적재산권 등 특성화된 법률 교육을 표방했으나 변호사 시험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고 설명했다.

◇ 현행 법조인 선발제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대
사법시험 부활에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법조인 선발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보였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장은 "앞서 9년간 로스쿨과 사법시험이 병존했으나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판사·검사 등 사법관을 선발하는 공직 사법관시험을 부활시키고 로스쿨 제도는 변호사 자격시험을 위한 통로로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독일은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으나 국민의 뜻에 따라 폐지했다"며 "국민 사이에서 로스쿨을 폐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로스쿨을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일정 수준의 법률 지식을 갖춘 이들이 시험을 통해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면 로스쿨 제도의 폐해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행 로스쿨 체제와 병존하는 이중트랙형 사법시험 또는 예비시험 방식이 현실적인 개혁안"이라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로스쿨을 통해 법조인을 선발함과 동시에,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자격시험을 통과할 경우 로스쿨에 준하는 자격을 얻은 것으로 간주하고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로스쿨을 설치한 대학이더라도 법과대학을 폐지할 의무가 없다. 법과대학을 졸업한 경우 로스쿨 재학 연한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여주기도 한다. 예비시험에 합격할 경우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주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비인가 로스쿨 출신이거나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시험에 통과하면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한다. 이른바 '베이비 바'(Baby Bar)로 불리는 제도다.
야간·온라인 로스쿨 등도 법조인 배출 경로의 다양화 방법으로 언급된다.
박 교수는 "온라인·야간 로스쿨을 방송통신대학에 설치할 경우 직장인이나 경제적 이유로 학업에 매진할 수 없는 이들도 법률가가 될 수 있는 경로를 열어줄 수 있다"며 "기존 정원의 30% 정도를 야간·온라인 로스쿨에 할당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youknow@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