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교과서 3종 분석…"신항로 개척 이후 아메리카 문명 언급과 대비"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국내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들이 아프리카 문명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단장 박기태)는 2일 최근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2022 개정 교육과정) 3종을 분석한 결과, 유럽의 신항로 개척을 다룬 부분에서 아프리카 문명이 없는 것처럼 묘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신항로 개척 이후 유럽의 교역망이 점차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확대됐다며 "신항로 개척을 주도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등 대서양 연안 국가가 번영을 누렸다"고 서술했다.
그러면서 "신항로 개척은 세계적인 규모의 환경 파괴를 유발하였다"며 아프리카 서해안의 섬들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극심한 삼림 훼손 등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5세기 후반에 시작된 유럽의 신항로 개척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어떤 문명이 있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유럽의 아메리카 문명 파괴에 관한 내용과 대비된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유럽인이 도하하기 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독자적인 문명이 발전하고 있었다"며 14세기 무렵 멕시코고원에서 아스테카 제국이 발전했고 15세기경 페루 남부의 안데스고원에서 잉카 제국이 발전했다고 서술했다.
미래엔 교과서의 경우도 신항로 개척 이후 유럽의 교역망 확장을 설명하면서 "아메리카에는 독자적인 정치 체제와 문화를 가진 문명이 존재하였다"고 명시했지만, 아프리카 문명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이 교과서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항해하는 도중에 열악한 노예선 환경 때문에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사망하였다" 등 아프리카의 피해를 간단히 서술하는 데 그쳤다.
또 비상교육 교과서는 신항로 개척과 관련해 "삼각 무역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많은 양의 금, 은이 유럽으로 들어오면서 유럽의 물가가 크게 뛰어올랐다"고 소개했지만, 아프리카 문명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반크는 이들 교과서가 유럽 중심의 서술로 아프리카에 어떤 문명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며 "아프리카 문명의 존재와 붕괴, 피해에 대한 서술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아프리카에 있었던 콩고왕국, 베냉왕국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콩고왕국은 1390년부터 1914년까지 중앙아프리카에 존재했다. 베냉왕국은 1180년경부터 19세기 말까지 서아프리카에서 번영한 왕국으로 알려졌다.
고교 세계사 교과서들이 아프리카 등지의 노예를 상품으로 서술한 방식도 문제로 지적됐다.
미래엔 교과서는 '세계적 상품 교역' 단원에서 "유라시아 대륙과 바다를 통해 향신료, 차 등의 상품 교역이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식민지가 건설되었으며 노예무역도 이루어졌다"고 서술했다.
세계사를 분석한 박지은 반크 청년연구원은 "노예무역 서술은 상품 교역이 아닌 인권 침해와 식민 구조의 관점에서 재정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세계적 상품 교역' 단원 내 소제목을 '세계 교역과 인적 이동' 등으로 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크는 그동안 한국이 피식민지로서 겪어온 제국주의의 상처를 세계에 바로 알리고,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활동해왔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정작 우리가 또 다른 제국주의적 시선을 답습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되돌아보아야 한다"며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서 드러난 아프리카에 대한 서술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유럽의 신항로 개척' 단원에서 유럽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은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며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면서도 균형 잡힌 교육을 어떻게 실현할지는 앞으로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최근 반크는 국내 초·중·고 교과서에서 아프리카 관련 서술의 편향성을 바로잡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앞서 중학교 사회 교과서들을 분석한 결과, 아프리카의 다양성과 복합성이 희석되고 있다며 교육부에 시정을 요청했다.
또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들이 아프리카를 일방적 도움의 대상으로서 원조와 봉사의 수혜자로만 부각하는 등 편견이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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