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출판사 '무제'서 선보인 에세이 신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유림은 간만에 고국에 돌아와 친구와 청계천을 걷던 중 호흡곤란이 오면서 쓰러졌다. 구사일생했지만,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반년 동안 거의 누워서 지냈다.
유림은 누워지내며 10년 전 뉴질랜드에서 만난 일본인 남성을 떠올렸다. 오로지 자신만 바라보던 남자였다. 그가 문득 보고 싶어진 유림은 수소문 끝에 그를 만난다. 남자는 아이 셋을 키운 이혼남이 됐지만, 유림은 개의치 않았다. 그와의 만남이 무모하고 어리석어도 그 길밖에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유림은 그의 아이를 가졌고,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그와 헤어졌으며 한국에 돌아와 '독박 육아'에 봉착한다.
문유림 에세이 '열평의 마그마'는 사랑의 상흔과 육아의 즐거움과 고통, 그리고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저자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그만의 작은 공간을 꿈꾼다.
저자의 사유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과거와 현재, 유럽·일본·한국을 오가면서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랑의 자취를 떠올리고, 딸에 대한 양육을 현실적으로 고민한다.
서평강 에세이 '나선형의 물'에도 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의 엄마가 된 서 작가는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은 찬란하면서도 잔인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미소를 볼 수 있는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온몸이 찢기고, 터지는 고통을 견뎌야만 아이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부서진 허리, 끊어질 듯한 손목, 금이 간 몸으로 아이를 계속 안아줘야 한다.
삶의 중심이 '나'에서 '아이'로 이동하는 자아 상실도 경험한다.
그런 자아 상실기를 수년간 겪고 난 후에야 "'엄마'이면서 '나'"인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때쯤, 자연스레 '엄마'가 떠오른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엄마와의 시간은 오래 허락되지 않는다.
'나선형의 물'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와의 이별 과정을 그린 에세이다.
상처와 오해가 쌓인 모녀 관계였지만, 저자는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깨달음은 늘 한박자씩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불치병에 걸린 엄마에게 남겨진 시간은 길지 않다.
최지현 에세이 '남자없는 여자들'은 외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없이 여자들끼리만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최지현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와의 추억, 엄마와의 아픈 기억 등 성장하면서 겪은 슬프면서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책에서 소개한다.
최근 출간된 '사나운 독립'은 1980년생 작가 문유림·서평강·최지현의 에세이 3편을 묶은 책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한 '청년 인문 실험' 사업에 선정돼 독립 출판물로 발행되었던 것을 이번에 배우 박정민이 운영하는 출판사 무제에서 정식으로 출간했다.
박정민은 "그저 독립 출판물로 남아있기엔 조금 더 많은 독자에게 읽혀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출간 결심을 하게 됐다"며 "젊은 독자는 부모의 마음을, 장년층 독자는 자녀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수 있는 책이라고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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