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 주파수 빗 이용해 양자 한계 수준의 정밀도 구현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양자물리학이 허용하는 한계 수준의 정밀도를 갖는 길이 측정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로, 표준연은 차세대 길이 측정의 표준 제정을 추진한다.
현재 가장 정확한 길이 측정 장비는 1미터(m)의 기준이 되는 '길이측정표준기'이다.
표준연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측정표준 대표기관이 운용하고 있는 길이측정표준기는 단파장 레이저 간섭계(두 빛이 만날 때 발생하는 간섭 패턴을 분석해 거리를 측정하는 장치)를 이용해 길이를 측정한다.
단파장 레이저는 눈금이 촘촘한 자처럼 파장이 매우 고르게 분포돼 있어 1∼10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의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단파장 레이저의 파장 범위가 좁아 한 번에 측정할 수 있는 길이가 제한적이다.
레이저의 파장 범위를 넘어서는 길이를 재려면 여러 번 측정을 반복해 측정값을 합산해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절대길이 측정 시스템은 긴 거리를 한 번에 측정할 수 있다.
기준점에서 측정 대상을 향해 빛(펄스)을 쏘고 되돌아오는 시간을 산출해 길이를 측정한다.
먼 거리도 빠르게 잴 수 있어 산업 현장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지만, 측정 정밀도는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수준이 한계였다.
빛이 이동하는 시간을 극미세한 간격으로 측정하기 어려워서다.
표준연 길이형상측정그룹은 절대길이 측정 시스템에 '광 주파수 빗'(Optical Frequency Comb) 간섭계를 적용해 정밀도를 길이측정표준기 수준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광 주파수 빗은 피아노 건반처럼 일정한 간격을 갖는 수천 개의 주파수로 구성된 빛의 다발이다.
기존 간섭계 광원과 달리 파장 범위가 넓으면서도 파장 배열이 매우 일정한 간격으로 정돈돼 있어 긴 거리도 한 번에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길이측정표준기의 정밀도와 절대길이 측정 시스템의 편리성을 고루 갖춘 기술로, 측정 정밀도는 0.34㎚에 달한다. 나노미터를 넘어 Å(옹스트롬·100억분의 1m) 수준이다.
현존 장비 중 최고 수준이자 양자물리학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 수준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을 차세대 길이측정표준기로 등재할 수 있도록 장비의 측정 불확도(측정 결과의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지표)를 평가하고 성능을 개선하는 후속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장윤수 선임연구원은 "AI반도체·양자기술 등 미래 산업의 경쟁력은 나노미터 단위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고 제어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며 "우리나라가 차세대 길이표준을 제시하는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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