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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으로 쓴 부처 가르침·10명의 저승 왕 그림, 日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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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가르침을 정성껏 옮겨 쓴 고려시대 불교 경전, 조선 전기에 그려진 귀한 불화가 일본에서 돌아왔다.
현재 이러한 유물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데다 유물 상태도 좋아 가치가 클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최근 일본에서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와 '시왕도' 등 2건을 환수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8일 밝혔다.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는 짙은 청색의 종이에 금가루를 아교풀에 개어 만든 안료로 필사한 고려시대 사경(寫經)이다.

사경은 불교 경전을 옮겨 적는 작업이나 그러한 경전을 뜻한다.
불교 교리를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했으나, 인쇄술이 점차 발달한 뒤에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공덕을 쌓는 방편으로 여겨졌다.
이번에 돌아온 사경은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을 쓴 것이다.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비로자나불(불교의 진리 그 자체를 형상화한 광명의 부처를 뜻함)이 도솔천 궁을 올라가는 과정을 전한다.

중국 당나라 때 승려인 실차난타(652∼710)가 한문으로 옮긴 80권 본 중 22권에 해당한다.
가로로 쭉 펼쳤을 때 10.9m에 달하는 유물은 불교 예술로서 가치가 크다.
표지에는 금·은빛으로 그린 연꽃 5송이가 있고, 넝쿨무늬가 연꽃을 감싼 형태다.
발원문에는 원통 2년(1334년) '정독만달아'(鄭禿滿達兒·1290∼?)라는 인물이 부모와 황제 등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경 작업을 완성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정독만달아는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원나라로 가 관직에 오른 환관이다.
경전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변상도(變相圖)도 주목할 만하다.
오른쪽 상단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양옆에 여러 보살을 배치했고, 나머지 화면에는 보리수 아래,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등을 넘나들며 설법하는 장면을 담았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정교하면서도 능숙한 선묘(線描·선으로 묘사함)를 볼 때 전문 사경승의 수준 높은 솜씨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 사경은 유물 다수가 국보, 보물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크다.
대방광불화엄경 사경은 현재 2건이 국보, 10건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번 유물은 코리아나화장박물관 소장품('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권15')과 발원문 및 내용이 일치해 동질로 여겨진다.
함께 고국 땅으로 돌아온 시왕도는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66㎝, 세로 147㎝ 크기의 비단 위로 저승에서 망자가 생전에 지은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시왕(十王)을 각각 그렸다. 10명의 '심판관' 모습이 모두 담긴 완질이다.

이 그림은 일찍이 학계에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일본 교토에서 '이조당'(李朝堂)이라는 고미술 상점을 운영했던 수집가 이리에 다케오(入江毅夫)가 발간한 '유현재선한국고서화도록'(幽玄齋選韓國古書畵圖錄)에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총 10명의 시왕이 모두 담긴 완질은 일본의 한 사찰이 소장한 것과 이 작품 둘밖에 없는 것으로 전한다.
국가유산청 측은 "현전하는 조선 전기 시왕도 완질본 2질 중 하나이자 국내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간에서 발원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연구 가치가 클 것으로 보인다.
각 폭에는 시왕 1명과 지옥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시왕은 중후한 체구에 근엄한 표정을 한껏 살려 크게 부각했지만, '옥졸'에게 체벌당하는 망자의 모습은 작게 묘사돼 있다.
염라왕(閻羅王)과 변성왕(變成王)을 그린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염라왕은 직사각형의 판에 구슬을 꿰어 늘어뜨린 형태의 관을 쓰고 있는데 관에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다. 중생의 죽음을 관장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권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변성왕 그림에서는 연꽃이 만물을 탄생시킨다는 불교적 사상을 담은 '연화화생'(蓮華化生)이 지옥 장면에서 등장한다. 관련한 그림에서는 처음 발견된 사례다.

두 유물은 일본 내 한국 문화유산을 꾸준히 찾는 과정에서 존재가 확인됐다.
고려 사경의 경우, 지난해 10월 고미술을 거래하는 일본인 소장자가 재단에 먼저 연락을 해왔고 이후 조사·협상을 거쳐 올해 4월 국내로 들여왔다. 소장자는 2023년 일본의 한 경매에서 유물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 전기 시왕도는 2023년 8월 일본 경매에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해 낙찰에 성공했다. 소장자는 약 20년 전 재일교포였던 부모님으로부터 한국 유물을 다수 상속받았다고 한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복권기금을 활용해 유물을 환수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고려와 조선 전기 뛰어난 불교미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앞으로 많은 국민이 보실 수 있도록 하고 그 가치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ye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