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영적 유산 상징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지난 5월 8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로 마침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최초의 미국인, 첫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 교황으로 주목받은 그는 목에 십자가를 걸고 있었다.
수도회 총장 조세프 리베라스 신부가 교황이 2023년 9월 30일 추기경으로 서임되는 날 준 뜻깊은 선물이다. 이 십자가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그 안에는 수도회의 영적 아버지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과 그의 어머니인 모니카 성녀, 같은 수도회 소속 성인 빌라노바의 토마스 수사의 성해(聖骸)가 모셔져 있다. 이들 성해는 원래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본부에 보관돼 있던 것이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전기 '교황 레오 14세'(가톨릭출판사)는 교황의 십자가에 담긴 이런 사연을 소개한다. 유해를 담을 십자가를 만드는 정교한 작업은 교황청 성물 관리소의 성물함 제작자 안토니오 코토네가 담당했다.
이 수도회는 복음적 청빈, 선교, 형제애를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영적 유산으로 간직하고 있다. 교황의 십자가는 수도회가 중시하는 깊은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전기는 선교사 출신인 레오 14세 교황이 "세상의 가장자리에 사는 이들,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을 진정으로 알았으며 그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 평가한다.
또 그가 "가난과 불의를 말할 때, 자연재해의 참혹함을 이야기할 때, 빈민가 삶의 고단함을 전할 때, 굶주림의 아픔을 말할 때, 권력자들의 횡포를 고발할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몸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감염병이 확산하던 시절 레오 14세가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현장을 누비던 모습을 페루 사람들이 지켜봤다고 전한다.
레오 14세가 약 20년에 걸쳐 선교사로 활동한 페루가 그의 "제2의 조국"이라고 책은 규정한다. 그는 여전히 "저는 언제까지나 선교사"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페루 국적도 취득했다고 한다.
결국 교황의 이력과 신념 등을 두루 살펴보면 레오 14세가 미국인이어서 교황이 된 것이 아니라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교황으로 선출됐다고 책은 풀이한다.
전임자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레오 14세를 발탁한 이유도 소개한다.
프란치스코는 레오 14세가 "교회 개혁의 핵심 인물"이라고 평가해 그를 "교황청에서 가장 민감한 보직 중 하나"인 교황청 주교부 장관에 임명했다고 한다.
전기는 레오 14세 교황이 직면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사제 부족을 꼽는다.
"교회는 성소자(聖召者)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따뜻한 환대와 진심 어린 경청, 성소 여정에서 든든한 격려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5월 11일 즉위 후 처음 열린 삼종기도에서 교황이 사제 또는 수도자를 지망해 신학교 입학이나 수도원 입회를 준비하는 사람, 즉 성소자를 거론한 것은 사제 부족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책은 풀이한다.
레오 14세는 교황이 되기 전 2년간 로마에 머물렀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책은 그가 "박학하고 온화하며 신중한 성품의 소유자"였고 "묵묵히 일하는 성실함과 정확하고 체계적인 업무 처리로 정평이 난 소탈하면서도 '학자 기질'이 강한 추기경이었다"고 그의 성품을 설명한다.
아울러 레오 14세가 살아온 과정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문화가 만나는 교차로와 같다"고 비유한다. 부친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혈통이고 모계는 스페인 혈통이며 일부 조상은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에 뿌리를 뒀다고 한다.
전기는 교황 전문 저널리스트 도메니코 아가소가 썼으며 이재협·김호열 신부, 이창욱 번역가, 바티칸 뉴스 한국어 번역 팀 가비노 김 등 4명이 한국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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