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 내전 희생자 기리는 '기억의 길'·'기억의 숲' 조성
유가족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 위해 기억하고 알리는 데 앞장"
(프라과<콜롬비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산호세 델 프라과시는 콜롬비아 남부 카케타주 내에서도 내전의 피해가 심각했던 지역이다.
1964년 내전 발발 후 농민, 원주민, 도시민 등 다양한 인구 집단이 강제 이주를 비롯해 학살과 실종에 시달렸다. 무장단체에 의한 마을 통제뿐만 아니라 소년병의 강제 징집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도 겪었다.
프라과시 주민은 1만4천여명인데 이 가운데 내전 피해자로 등록된 이만 9천여명에 이른다. 더욱이 반군 잔존 세력이 남아 있어 폭력 재발의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은 콜롬비아 정부가 2016년 반군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 국제이주기구(IOM)와 함께 주민 주도의 역사 복원과 평화 회복을 돕고 있다.
조금씩 일상을 찾고 있는 프라과시는 시내를 통과하는 강을 중심으로 래프팅과 자연 체험 등의 관광을 특화해 콜롬비아 전역과 외국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코이카는 올 초 관광지 한복판에 '기억의 길'과 '기억의 숲'을 조성했다.
'기억의 길'에는 강변을 따라서 40여개의 표지판을 설치해 내전 당시 사망 또는 실종된 피해자들을 알리고 또 이에 저항했던 기록도 게재했다.
또 피해자를 기리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 토종 나무를 심은 숲을 조성해 생명에 대한 존엄을 시각화했다.
이와 함께 지역 청년 및 활동가를 중심으로 '평화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역사를 알리는 '기억 수호자'라는 커뮤니티 가이드도 양성했다,
지난 6일 코이카와 IOM 관계자들은 현장을 찾아 피해자 단체 관계자, 커뮤니티 가이드, 시 정부 관계자 등을 만났다.
에르비 아벨로 오르타 시장은 2016년에 의회가 무력 분쟁 피해자 지원법을 제정해 피해자협의체가 결성됐고, 이에 따라 시에서는 피해 복구와 존중, 그리고 원상회복을 위한 시정을 펼친다고 소개했다.
오르타 시장은 "등록 안 된 피해자와 타지로 떠난 이들을 합치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이라며 "제일 중요한 것은 피해자와 비 피해자 어느 쪽도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인도 찾는 관광지 한복판에 피해를 알리는 조성물을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커뮤니티 역사 가이드인 윌리암 윌체스 산체스 씨는 "전국의 130여 내전 피해 지역 중에 카케타주는 16개 시가 모두 피해지역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피해가 심했다"며 "힘들었던 기억이라서 잊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그렇기에 더 기억해야 하고 교육 효과를 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서 모두가 이곳에 조성되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표지판에는 내전 초기 양측 간 화해에 앞장서다 총살된 지도자, 이유도 모른 채 분쟁에 휩쓸려 사망한 부모와 자식 등의 이야기를 비롯해 하나하나 안타까운 사연들로 가득했다. 또 실종돼 생사를 알 수 없어 멍울진 가슴을 안고 사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담겼다.
피해자협의체 대표인 엘리사벳 카르도나 꼬레오 씨는 내전으로 남편과 당시 네 살배기였던 아이를 잃었다.
그는 "유해 발굴과 실종자 수색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어서 피해 복원이 아직 완전히 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가해자 처벌보다 용서와 화해가 중요하다"며 "증오는 증오를 낳으며 어느 쪽에도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상처를 딛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기억의 길'과 '기억의 숲'을 조성한 것은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은 피로 얼룩진 역사가 아니라 평화에 대한 노력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억의 길'은 바로 '기억의 숲'으로 맞닿아 있었다. 이 숲은 피해자를 기리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담아 토착 나무를 심었다. 바닥에 돌을 깔고, 토종나무를 심어 방문자들이 숲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을 생각하도록 했다.
이 사업은 무력 분쟁의 기억을 공동체 기반 교육과 예술로 전환한 평화 실천 사례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오르타 시장은 "피해자와 비 피해자 또는 누군지 모를 가해자 등이 모두 과거를 덮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기에 프라과시는 지금 모든 분쟁 지역을 대상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며 "문화유산으로 남긴 우리의 사례가 널리 퍼져 모든 피해 지역에 제2, 제3의 '기억의 길', '기억의 숲'이 조성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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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