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누구를 위한, 뭘 위한 전격 경질 사태를 만들었나.
키움 히어로즈는 14일 홍원기 감독, 고형욱 단장, 김창현 수석코치 보직 해임을 공식 발표했다. 보직 해임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썼는데, 쉽게 말하면 경질했고 잘랐다는 것이었다.
키움,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꼴찌였다. 올해도 사실상 꼴찌다. 전반기 10위인데, 9위 두산 베어스와의 승차가 10.5경기다. 프로 세계에서 따라잡기 쉽지 않은 차이. 2022년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던 강팀을 3년 연속 꼴찌로 추락시켰다면 감독도, 단장도 경질 결정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키움은 '특수한' 구단이다.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다. 다시 말하면 '눈먼 돈'이 한푼도 없다. 생존을 위한 구단 운영이다. 그러니 돈을 절대 함부로 쓸 수 없다. 매년 샐러리캡 최하위에, 고액 FA 선수 잡는 건 남의 나라 얘기다.
2021 시즌을 앞두고 홍원기 감독과 고형욱 단장이 취임했다. 정규시즌 5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22 시즌에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SSG 랜더스에 밀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키움의 투혼과 감동 스토리에 야구계가 들썩였다. 홍 감독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3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문제는 2023 시즌부터였다. 투-타 핵심인 이정후(샌프란시스코)와 안우진이 부상을 당하고 회생 가능성이 사라지자 키움은 '리빌딩'을 선언했다. 이정후가 시즌 종료 후 미국 메이저리그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안우진도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전략적 선택을 한 가운데 2023 시즌 꼴찌, 그리고 지난해도 최하위 성적이 이어졌다.
리빌딩. 말은 참 좋지만 어려운 일이다. 젊은 선수 위주로 팀 전력을 새롭게 다진다고 하면서, 또 성적은 아예 포기 못한다. 현장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딱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올해가 절정이었다. 지난해 타격이 부족했다며 외국인 타자 2명을 쓰겠다고 파격 선언했다. 그런면서 지난해 리그에서 가장 강력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원투펀치 후라도, 헤이수스를 사실상 버리다시피 했다. 이 선수들에게 100만달러를 훌쩍 넘는 고액을 주고 데리고 있어봐야 선수층 한계로 성적이 안 날 것 같고, 안우진이 돌아오는 내년을 위해 데리고 있자니 올해 또 잘하면 200만달러 가까운 리그 최고 몸값을 줘야하는데 그럴 바에는 일찌감치 다른 길로 가자는 게 이유였다.
그런 가운데 키움은 후라도를 이용해 돈과 신인지명권, 그리고 선수를 얻어내려 모 구단과 거래를 하다 실패했다. 여의치 않자 울며 겨자 먹기로 보류권을 풀어줬고, 후라도와 헤이수스는 각각 삼성 라이온즈, KT 위즈 품에 안겼다.
다른 감독들은 취임하면 '취임 선물'을 받는다.
대형 FA 선수들과의 계약을 통해 감독에게 힘을 실어준다. 홍 감독은 반대였다. 최고 외인듀오는 물론, 국내파 핵심 전력도 줄줄이 빠져나가기만 했다.
2021년 감독이 되자마자 공-수의 핵 김하성(탬파베이)을 미국 메이저리그로 떠나보내야 했다. 이후 이정후, 김혜성(LA 다저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메이저리그로 향했다.
선수들의 의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키움은 메이저리그에 포스팅으로 선수를 보내고 받은 보상금으로 구단 운영을 해온 팀.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선수들을 키우는 구단이다. 애초에 싹이 보이는 선수들을 붙잡을 마음이 없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칠 수 있다. 하지만 리빌딩을 천명하며 박동원(LG) 김태훈(삼성) 최원태(삼성) 이지영(SSG) 김휘집(NC) 조상우(KIA) 등 팀 주축 선수들을 사실상 팔아넘겼다. 매번 돈, 지명권을 얻었다.
그것도 그럴 수 있다. 구단을 운영하는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도저히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전력의 병사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놓고,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갑자기 현장 책임을 묻는 건 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
올시즌만 해도 그렇다. 홍 감독은 후라도, 헤이수스를 버리는 결정을 한 당사자가 아니다. 전적으로 프런트의 판단이었다.
힘겹게 시즌을 시작한 홍 감독은 외국인 타자 두 명의 부진 속 팀이 망가지다, 에이스 역할을 해줄 알칸타라의 합류에 죽다 살아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알칸타라와 웰스 합류 후, 팀이 초반보다 안정세를 타는 중이었다.
장기 레이스 선발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올시즌 성적 부진이 감독의 책임일까.
후라도와 헤이수스를 버리고 푸이그와 카디네스를 뽑아온 결정을 내린 책임자가 져야하는 게 아닐까.
홍 감독과 이번에 경질된 고 단장이 이런 무모한 작업을 진행했을까. 두 사람의 결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야구인들은 안다.
차라리 경질의 이유를 다른 이유로 들었다면 모를까, '성적'을 얘기한다면 키움 구단을 좌지우지하는 수뇌부는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극한의 리빌딩이 진행중이라면 적어도 '리빌딩 끝, 지금부터 성적 내시오'라는 시즌까지는 기회를 주고 그 때 성적이든 뭐든 문제가 있으면 후속 조치를 하는 게 일말의 예의 아닐까.
키움 관계자는 "현재 분위기로는 미래가 없다는 판단 하에 위재민 사장이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만 얘기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