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중 印 외교장관, 왕이 외교부장 이어 한정 국가부주석도 만나
앙숙관계 해빙 분위기…5년 만에 中-印 직항편 운항도 재개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앙숙 관계' 중국과 인도가 심상찮은 행보를 보여 주목된다.
최근 몇 개월 새 양측이 의미 있는 접촉을 해 온 데 이어 지난 13일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양국이 협력 강도를 높이고 있어서다.
15일 톈진에서의 상하이협력기구(SCO) 외교장관회의 참석 목적으로 방중한 자이샨카르 장관은 이틀 앞서 베이징에 도착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회동한 데 이어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을 만나 눈길을 끈다.
현재로선 시진핑 국가주석이 자이샨카르 장관을 접견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과 인도 양국이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를 빠른 걸음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환구시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자이샨카르 장관이 왕이 외교부장과 한정 국가부주석을 만나 양국 간 협력 의지와 우호를 다졌다고 전했다.
특히 전날 한정 국가부주석이 "주요 개발도상국이자 남반구 중요 구성원인 중국과 인도가 '용과 코끼리의 탱고'를 실현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하자, 자이샨카르 장관은 "양국 관계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호혜적 협력을 증진하자"고 화답해 눈길을 끌었다고 환구시보는 전했다.
13일 왕이 외교부장은 "고대 동양 문명의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인도가 조화로운 공존과 공동의 성공을 이루자"고 강조했고, 자이샨카르 장관은 회동 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방중 기간의 논의가 (중국과 인도 간) 긍정적 궤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인도 외교장관의 중국 방문은 2020년 양국 국경지역인 갈완 계곡에서 유혈 충돌이 난지 5년 만이다.
3천488㎞에 이르는 실질통제선(LAC)을 사이에 두고 충돌이 잦은 양국은 좀처럼 화해와 공존의 길을 찾지 못해왔다.
그러다가 작년 10월 러시아 카잔에서의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과 모디 총리가 만난 것을 계기로 소통의 물꼬가 터졌다. 지난달 중국에서 열린 SCO 국방장관 회의에 라즈나트 싱 인도 국방장관이 참석해 둥쥔 중국 국방부장과 만나 국경분쟁의 영구적 해결 모색을 논의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가운데 전날 중국과 인도는 5년 이상 중단돼온 국가 간 이동과 직항 항공편 운항 재개에 합의했다.
특히 양국의 외교 파트너인 자이샨카르 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은 국경에서의 긴장 완화와 관리를 위한 지속적 노력을 지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렇지만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법명 톈진 갸초) 문제는 중국과 인도 간에 난제로 남겨진 모양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6일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는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달라이 라마의 90세 생일 축하 행사가 열렸으며 이에 모디 총리가 축하 메시지를 보낸 데 대해, 하루 뒤인 지난 7일 중국 외교부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외교가에선 8∼9월로 예정된 SCO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과 인도가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적 관세 공격이 중국과 인도 양국의 관계 개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관세 공격의 맞상대라고 할 중국으로선 미국을 뺀 어느 국가와도 긴밀한 경제관계를 맺어야 할 입장에서 '앙숙' 인도에도 적극적인 손 내밀기를 해왔으며, 인도 역시 중국과의 연대도 고려해야 할 처지여서 서로 거리 좁히기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인도를 "무역에 있어 매우 큰 악당"이라고 칭하며 관세를 통한 불균형 바로잡기를 공언한 바 있고,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에는 새로운 상호관세 부여보다는 잠정 무역 합의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미국을 상대로 457억달러의 흑자를 낸 인도는 미국의 관세를 20% 이하로 낮추려고 협상하고 있으나, 농업 개방을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중국은 SCO의 틀 안에서 인도와의 협력 범위를 확장한다는 심산이며, 인도로서도 미국의 관세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SCO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정치·경제·안보 협력체인 SCO는 2001년 6월 정식으로 출범했으며 인도는 2017년 합류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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