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사제 총기·폭탄 제작 영상 '수두룩'
오패산 사건·아베 피격도 온라인서 총기 제작법 배워
조악하지만 위력은 상당…"초대형 동물도 살상 가능"
"영상 서비스 시청 범위 제한 등 플랫폼 책임 강화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지난 20일 인천 송도에서 60대 A씨가 사제 총기로 아들을 살해하고 집에 사제 폭발물을 설치한 충격적 사건에 온라인 무기 제작 콘텐츠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A씨는 유튜브를 통해 사제 총기 제작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무기 제작 영상의 무분별한 확산은 이미 2016년 '오패산 총격 사건' 때부터 문제로 지적됐지만 9년이 지난 현재 실효성 있는 제재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때 '총기 없는 나라'로 불리며 총기·폭탄 등 무기 청정국으로 여겨진 한국이 온라인 환경으로 인해 위협받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패산 사건부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격 사건까지 피의자들이 대부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총기 제작법을 익힌 만큼 이를 방치하는 것은 범죄를 방관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 무기 제작 영상, 주로 해외서 제작…SNS, 신고해야 대응
24일 현재 SNS에는 총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부터 위력을 높이는 방법까지 구체적인 총기 제작법이 넘쳐난다.
영상물은 주로 해외에서 제작됐으며, 재료를 깎아내고 조립하는 과정 등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식이었다.
총의 종류도 권총, 라이플 등 다양했으며, 과일이나 풍선, 젤라틴 등으로 직접 위력을 확인해주기도 했다.
폭탄 제작법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주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 제작법이었다.
유튜브와 틱톡 등 SNS는 커뮤니티 정책의 일환으로 시청자에게 총기 등 제조법을 안내하는 콘텐츠를 불허하고 있다.
다만 영상 게시 후 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정되기 어렵고, 이용자들도 신고를 피하기 위해 검색 키워드를 교묘하게 바꿔 영상을 게시하고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불법·유해 정보를 심의해 시정 요구를 하고 있으나, 최근 3년간 성과는 들쭉날쭉했다.
방심위에 따르면 총포·도검·화약류 제조 등 콘텐츠 관련 시정 요구를 한 건수는 지난해 2천447건으로 전년(1천785건)보다 37% 늘었으나, 2022년(5천610건)보다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총포화약법에 따르면 사제 총기 등 불법 총기를 제조·판매·소지하다 적발될 경우 3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폭발물의 경우 그 성격과 위력에 따라 형법, 총포화약법 등이 적용될 수 있다.
◇ 사제 무기 살상 사건 이어져…A씨 집서 폭발물 15개 발견
SNS를 통해 제조법을 학습해 사제 무기를 만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내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오패산 총격 사건'이 있다.
2016년 10월 피의자 성병대(범행 당시 45세) 씨가 강북구 번동 오패산터널 입구에서 사제 총기로 이웃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뒤 112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김창호 경감(당시 경위)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이다.
성씨는 유튜브를 통해 사제 총기와 폭발물 제조법을 찾아 범행 도구를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오패산 사건 이후에도 국내에서는 사제 총기를 보관하거나, 이를 활용해 난동을 부리거나, 사용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동물을 쏘아 죽이는 사건이 이어졌다.
2019년 10월 충북 제천시에서는 사제 총기로 멧돼지를 잡은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으며, 2023년 9월에는 강제집행에 반발한 60대가 사제 총기를 들이밀며 난동을 부려 구속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8월 광주의 한 치과에서는 70대 남성이 치료에 불만을 품고 사제 폭발물을 터트렸고, 2022년 4월 부산에서는 생화학을 전공한 40대 남성이 주택가에 세워둔 라바콘(안전고깔) 안에 직접 만든 폭발물을 설치한 뒤 원격조종으로 폭발시킨 사건이 있었다.
또 2017년 6월 연세대에서는 대학원생이 보낸 사제 폭발물에 지도 교수가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에 아들을 사제 총기로 살해한 A씨의 집에서는 시너와 점화 장치를 비롯한 폭발물 15개가 발견됐다. 폭발물은 21일 낮 12시에 폭발하도록 타이머 설정이 돼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2022년 7월 아베 전 총리가 사제 총기 피격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 피의자도 유튜브 등 영상을 참고해 총을 제작했다고 진술했으며, 그의 집에서는 사제 총기 여러 정이 발견됐다.
2023년 4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에게 폭발물을 던진 피의자도 온라인 동영상을 통해 폭발물 제조법을 익힌 것으로 알려졌다.
◇ 사제 무기 강력한 위력…"테러 준하는 대응 보여야"
겉보기엔 조악하지만, 사제 무기의 위력은 상당하다.
이번 인천 송도 사건의 피해자는 가슴 부위에 산탄을 맞고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오패산 사건' 피의자 성씨의 총은 김 경위의 왼쪽 어깨 뒷부분을 맞춰 폐를 훼손할 수 있었을 만큼 강력했다.
지난해 발표된 논문 '흑색화약과 쇠구슬을 이용하는 파이프형 사제총기류의 위험성 평가'(박새한, 최창호, 김동환)에 따르면 성씨가 만든 총기의 구조는 "제작 여하에 따라 초대형 동물을 살상 가능한 위력"으로 분석된다.
연구원들은 "일반 권총류에 근사하거나 보다 치명적인 위력의 총기로 변모할 수 있다"며 "유사 사례가 발생할 경우 실제 군수산업용 총기를 이용하는 테러에 준하는 대응을 보여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제언했다.
추진 화약의 충전량에 따라 위력 범위는 가변적이지만, 인명 살상이 충분히 가능한 만큼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베 전 총리를 숨지게 한 사제 총기는 7∼8m 거리에서 쏘아도 쇄골하동맥을 손상할 수 있을 만큼 위력이 컸다. 아베 전 총리로부터 약 20m 앞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선거 유세차에서도 탄흔으로 보이는 구멍이 여러 개 발견돼, 일본 경찰도 그 위력이 상당했을 것으로 봤다.
지난해 국정원은 국내에서 인명 살상이 가능한 수준의 타정총, 석궁, 사제 총기 부품을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해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 "경찰·방심위 시정조치, 불법콘텐츠 속도에 턱없이 못미쳐"
전문가들은 사제 총기·폭탄 제작 영상이 버젓이 게시되고 이를 토대로 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온라인 플랫폼이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총기 소지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총기에 대한 욕구는 높지만, 이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공급은 없지만 수요가 있는 상황"이라며 "이 틈을 유튜브 등 SNS가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사실상 SNS가 이용자들과 약속한 자정작용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범죄행위를 두둔하거나 묵인하면서 돈을 버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문화하고 보다 강력한 제지를 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도 "플랫폼이 범죄 행위를 방조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은 총기 소지가 합법인 만큼 무기 제작에 대한 문화적 인식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총기 제작·소지가 금지된 나라에 대해서는 영상 서비스 시청 범위를 제한하는 등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매년 불법무기 집중단속을 벌여 총기 소지를 규제하고 있으나 사제 총기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는 미미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무기 집중단속으로 압수된 총기는 총 78정으로, 최근 5년(2020∼2024년) 중 가장 많았다. 다만 이중 사제 총기는 없었으며, 건설 현장에서 못을 박는 용도로 쓰는 '건설용 화약식 타정총'이 대부분이었다.
경찰이 지난 5년간 인터넷상 총기 제조법 삭제·차단을 요청한 건수는 8천893건이다.
지난 23일 경찰은 인천 송도 사제 총기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가용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온라인상 총기 제조법 등 불법 게시물을 삭제·차단하고 게시·유포자를 추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제한된 인력과 예산으로는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유튜브 등 콘텐츠에 대응하기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새롭게 올라오는 콘텐츠 속도에 비하면 경찰 및 방심위의 시정 조치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총기 콘텐츠를 직접 모니터링하는 인력 및 기관을 둬 책임소재를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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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