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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못볼지도] 없어서 못 팔았던 충주사과, 7년만에 반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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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충북 충주는 전국 사과 주산지 중 한 곳이다
예로부터 일조량이 풍부하고 하루 중 최고·최저 기온의 차이도 크다.

일조량은 과일의 착색에, 일교차는 과일의 맛과 당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
게다가 농작물 재배에 알맞은 사질양토가 충주를 가로지르는 남한강 주변에 쌓이면서 사과 재배의 최적지로 여겨졌다.
이런 지리적 이점 덕에 충주산 사과는 과수시장에서 '명품 사과'로서의 경쟁력을 인정받아왔다. 시내 일부 구간에는 사과나무 가로수가 조성돼 있다.
충주사과는 2003년과 2005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 브랜드 평가에서 파워브랜드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지리적표시제도에 등록돼 몸값을 높이기도 했다.
충주원예농협 전일도 상무는 "충주사과는 품질이 뛰어나고 지역 자체도 수도권과 가까우니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만큼 소비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서울에서 특판 행사를 열면 상품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지역의 사과 농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고온과 병해충 여파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고온 때문에 이제 평지 농사 못 지을 것 같아요"
충주시 산척면에서 평생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이종관(74)씨는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열매가 타버릴까 걱정스러워했다.
사과는 충분히 익기 전에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 일소(日燒·햇볕 데임) 피해를 본다.
통상 섭씨 30도 이상의 고온이 지속되면 성장이 멎고, 강한 햇볕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과일 표면이 불에 덴 것처럼 색이 변한다.
예전에는 일소 피해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 작년과 올해는 일소 피해를 본 농가가 많아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씨는 "평지에서 햇볕을 그대로 받으면 과피가 갈라지거나 색이 예쁘게 나오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진다"며 "기온이 올라가면서 이제는 평지에서는 농사를 못 짓고 그나마 햇볕이 적당한 산 주변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사과는 연평균 8∼11도, 생육기에는 15∼18도의 서늘한 환경을 선호하는 온대 과수다.
그러나 충주의 여름은 점점 길고 뜨거워지고 있다.

충주의 연평균 기온은 1973년 기상청 관측 이래 1997년까지 꾸준히 9∼11도를 유지하다가 1990년(12.3도) 처음으로 12도를 넘어섰다.
이후 11∼12도에 있다가 2014년 이후로는 한해(2022년 11.9도)를 제외하고 12도를 웃돌았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연평균 기온이 13도를 넘어 13.8도까지 치솟았다.
물론 기온 상승이 충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10년마다 약 0.2도 비율로 상승해 왔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2100년까지 기온이 최대 7도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에 따라 세기말에는 한반도에서 사과를 재배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신민지 농업연구사는 "극단적인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2050년대쯤에는 사과 재배에 적합한 지역은 점차 강원도 북부 고지대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 '과수 구제역' 과수화상병에 전국 최대 규모 피해
기후 변화는 병해 발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몇 년간 충북 일대 과수원, 특히 사과밭에서는 고온다습 환경에서 활발히 전파되는 과수화상병이 창궐해 상당한 피해가 났다.
감염되면 잎과 줄기가 불에 탄 듯 붉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하며 마르는 증상을 보인다.
과수화상병 세균은 겨울철 나무에 잠복하고 있다가 비가 내려 습기가 많은 상태에서 기온이 오르면 모습을 드러낸다.
오창식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겨울철 평균 기온이 높아지고 있어 병균들이 나무속에서 숨어있기에 용이해졌고, 봄철에는 기온의 변동성이 커지며 나무의 저항력이 약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충주는 과수화상병 피해가 전국에서 심각한 지역 중 하나다.

과수화상병이 처음 발생한 2018년부터 올해까지 누적 피해 면적은 356.9㏊에 달한다. 축구장(0.714㏊) 499개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감염 과수 매몰 후에도 병균이 토양에 잠복해 있을 수 있어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농장은 2년 동안 같은 작목을 다시 심을 수 없다.
과수화상병이 과수의 구제역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 7년 새 사과밭 50% 급감…신품종 '이지플'로 승부수
이렇듯 기후변화와 과수화상병에 도심 개발, 농가의 고령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충주의 사과 재배면적은 급속히 줄고 있다.
2018년에 1천898㏊로 정점을 찍은 이 지역 사과 재배면적은 현재 955.3㏊까지 쪼그라든 상태다. 불과 7년 만에 943ha(50%)가 줄었다.
충주시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이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고온과 병해에 강한 국산 품종 '이지플'을 농가에 보급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지플은 저장성이 좋고 병해에 강하며, 기존 홍로보다 상품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기관은 2021년 3월부터 이지플에 대한 실증시험을 거쳐 지난해 생산단지 확대를 위한 공식 업무협약을 했으며, 사과농장도 조성하고 있다.
올해는 11㏊ 수준이지만, 2030년까지 재배면적을 100㏊까지 늘린다는 구상이다.
충주시는 이와 별개로 농가에 묘목값과 시설비 등을 지원하고, 올 연말에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스마트 과수원 특화단지' 공모사업에도 도전한다.
시 관계자는 "공모사업과 신품종 보급 등을 토대로 2030년까지 재배 면적을 2천520㏊로 늘려 사과 주산지의 명성을 유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vodcast@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