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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웃] 태국-캄보디아 분쟁…'악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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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태국과 캄보디아는 '악연'의 역사를 공유한다. 13세기 인도차이나를 지배하던 크메르 제국에 중국 남서부에서 거주하던 타이족이 남하했다. 타이족은 수코타이와 아유타야 왕국을 차례로 세웠고, 양국의 세력 균형은 무너졌다. 15세기 아유타야군이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를 함락하자 제국은 몰락했다. 캄보디아는 서쪽의 태국, 동쪽의 베트남에 영토를 잠식당하며 수백 년 동안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두 나라 간 악연의 상징은 프레아 비히어르 사원이다. 크메르 제국이 9세기 초 세운 힌두교 사원으로, 험준한 절벽 위에 세워진 걸작 건축물이다. 현재 캄보디아 영토에 있지만, 사원 접근로는 태국 땅을 거쳐야 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62년 "사원은 캄보디아의 것"이라고 판결했지만, 주변 4.6㎢ 부지의 귀속 문제는 여전히 애매한 상태다. 2008년 캄보디아가 사원을 단독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태국은 반발했다. 양국은 2009∼2011년 이 일대에서 중화기까지 동원해 교전을 벌였다. 천년 고찰 하나가 국경분쟁과 민족감정이 얽힌 '트리거'가 된 셈이다.

이번 충돌도 맥락은 비슷하다. 7월 24일 국경에서 총성이 울렸고, 양측 간 사상자가 발생했다. 태국은 민간인을 포함해 10여 명이 숨졌고, 캄보디아에서도 사상자가 나왔다. 사흘간 주민 수만 명이 대피했다. 양국은 "상대방 도발에 대한 방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배경엔 해묵은 민족 감정과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올해 초 양국의 긴장이 고조됐다. 2월엔 태국군이 분쟁 지역에서 캄보디아 관광객들이 자국 국가를 부르는 것을 막아 민족 자존심을 건드렸다. 5월엔 총격전으로 캄보디아군 1명이 사망했다. 일련의 사건이 불신을 키웠고, 7월 무력충돌로 이어졌다.

양국 관계가 급속히 악화한 계기는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와 훈센 캄보디아 전 총리(현 상원의장) 간 통화 유출 사건이었다. 패통탄 총리는 6월 중순 통화에서 훈센을 '삼촌'이라 부르며 자국군 사령관을 '반대편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이 발언이 공개되자 태국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연정 파트너였던 보수 정당이 탈퇴를 선언했고, 야당과 상원은 총리 탄핵을 추진했다. 패통탄 총리의 지지율은 30%대에서 9%로 급락했다. 군부와 보수 진영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국경지역 긴장도 고조됐다.

두 나라 간 갈등의 이면엔 미국과 중국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캄보디아는 사실상 중국의 전진기지로 불린다. 시아누크빌 항만·고속도로·메콩강 댐 등 핵심 인프라에 중국 자본이 깔려 있다. 반면 태국은 미국과 70년 가까이 이어진 안보 파트너다. 매년 '코브라 골드' 연합훈련을 주최하며,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한다. 이번 분쟁이 미중 간 대리전은 아니지만 동남아 패권을 둘러싼 두 강대국의 영향력 경쟁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