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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피,땀,눈물,추억이 담긴 '보물'이 세상 밖으로…장미란·최민정 다음 기증릴레이 참여 스타는 '사격 전설' 김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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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눈에 (훈련일지, 트로피 등이)안 보여서 많이 아쉽고 속상한 게 사실이에요."

패럴림픽 메달리스트인 전 사격 여제 김임연은 25일 인터뷰에서 국립스포츠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스포츠 스타 기증 릴레이'의 일환으로 소장품을 내놓은 심정을 말했다. 김임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근 30년간 운동을 했다. 애착이 가는 소장품을 집안 장식장에 전시를 해놓고 늘 바라보고, 닦고 또 닦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쪽에서 연락이 와서 '내년에 국민스포츠박물관이 개관하는데, 꼭 좀 기증 릴레이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이 됐다"라고 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문체부와 함께 '한국 스포츠 역사·유물 보존과 전시·교육' 등을 위해 2026년 정식 개관을 목표로 대한민국 최초의 스포츠 분야 종합형 국립박물관인 국립스포츠박물관 착공에 돌입했다. 지난 5월과 6월 각각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이 기증 릴레이에 참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세계신기록으로 대회 3연패를 달성하는 등 패럴림픽 사격 종목의 전설로 불리는 김임연은 장애인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동참했다. 9개의 패럴림픽 메달(금5, 은3, 동1), 선수 시절 직접 기록한 사격 훈련 일지 5권,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가 공식 인증한 2002년 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대회 당시 세계신기록 인증서 등 총 134점의 소장품을 기증했다. 고3 아들은 엄마가 메달 하나를 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끝까지 소장품 기증에 반대했다. '넌 나중에 군대에 가고 직장에 다니고 사회인으로 살아가겠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란다. 이제 엄마의 소장품을 세상에 내놓는 게 좋지 않겠니?'라는 말로 아들을 설득했다. 김임연은 "올림픽공원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 스포츠박물관이 개관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많은 사람이 박물관에서 내 소장품을 보며 '장애인 선수 중에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생각한다면 만족할 것 같다"라며 웃었다.

김임연이 내놓은 134점의 소장품 중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훈련 일지 한 권, 메달 하나하나에는 피, 땀, 노력 그리고 추억이 새겨져 있다. 네 살 때 소아마비 증세를 보인 김임연은 학우들의 도움을 받아 등교해야 할 정도로 힘겨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소녀' 김임연은 한 사생대회에서 우연히 사격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운명처럼 총을 쥐었다. 1988년 서울패럴림픽에서 예정된 사격 종목이 돌연 열리지 않는 충격 속 은퇴를 선언했던 김임연은 '1992년 바르셀로나패럴림픽 대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보라'는 친구의 말에 3년 만에 총을 잡았다. 김임연이 훈련일지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한 가지 목표를 이루면, 다음 단계의 기록을 경신할 수 있도록 매일 '일기장'을 썼다. 훈련 방식, 대회 직전 컨디션, 사격장 조명, 크리크 조정, 견착 방법 등을 적었다. 특정 대회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1년 전 같은 시기에 쓴 일지를 보면서 내 컨디션을 체크했다. 당시 지도자, 동료 선수 할 것 없이 내 일지에 관심이 많았다"라고 했다. 한 대회를 마치면 한두 달은 쉬어야 할 정도로 지독한 연습 벌레이자 사격 자세부터 오색빛깔 대회 유니폼까지 새로운 걸 창조하는 탐구자였던 김임연은 처음 출전한 바르셀로나대회부터 메달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져보는 총으로 쏘는 날, 경기 당일 극악의 컨디션인 날에도 메달을 따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한국 패럴림픽 사상 최초 메달을 딴 여자 선수는 바로 김임연이었다. "패럴림픽 한번 나갈 때마다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겼다. 보이지 않는 기록을 만들어내야 하므로 늘 외로웠다. 마음 놓고 메달 자랑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뒤에 있는 장애인 선수들이 언론에 비춰지고, 국민이 장애인 스포츠를 보게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라고 돌아봤다.

그랬던 김임연은 2012년 런던패럴림픽을 1년 앞두고 두번째이자 마지막 은퇴 선언을 하고 그야말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APC아시아장애인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장과 KPC대한장애인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국제 심판 등으로 활동했지만, 사격에 온 인생을 바친 선수 시절과는 비교할 땐 사뭇 다른 행보였다. 김임연은 "얼마 전 근 10년 만에 사격장을 방문했는데, 총을 보니 눈물이 났다"며 "당시엔 오랜 합숙 생활로 인해 아들이 엄마 곁을 그리워했다. 지난 10여년간은 몸이 아프신 노모와 아들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세상에 내놓은 소장품처럼, '전설' 김임연도 다시 사격장에 발을 디딜 채비를 하고 있다. 김임연은 "신설 신생팀 감독을 맡아 내 노하우로 후배들을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은 게 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 체육 역사의 산증인답게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메시지도 체육계에 던졌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는 이천 선수촌에 사격장이 없었다. 실탄을 살 돈도 없었다. 최근엔 환경적으로 좋아졌다지만, 장애인 선수들의 중증화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예전만큼 많은 시간 훈련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양궁 종목의 소음 훈련처럼 최첨단 과학 훈련이 접목되어야 할 것 같다. 또 장애인 스포츠가 대중에 더 알려져야 하고,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시합에 뛰는 선수들에겐 힘이 된다"라고 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