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손없히왕(손흥민 없으면 히샬리송이 왕)'이라는 표현은 농담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손흥민이 떠나버린 토트넘 홋스퍼는 상당히 암울해보였다. 토마스 프랭크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잡았지만, 여름 이적시장에 전력 보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흥민의 빈자리를 메울 외부전력 수혈이 계속 좌절됐다. 심지어 제임스 매디슨까지 부상으로 장기 이탈하는 악재마저 벌어졌다. 새 시즌에 큰 재앙이 벌어질 위기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우려를 일시에 날려버릴 만한 놀라운 반전이 벌어졌다.
토트넘 팬들로부터 '천덕꾸러기',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퇴출 요구를 받았던 브라질 출신 공격수 히샬리송이 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히샬리송은 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번리를 상대로 치른 2025~2026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개막전에서 선발로 나와 전반 10분에 환상적인 발리슛을 상대 골망에 꽂아넣은 데 이어 후반 15분에도 그림같은 오른발 바이시클킥으로 쐐기골까지 넣었다. 히샬리송의 멀티골을 앞세운 토트넘은 브레넌 존슨의 추가골까지 합쳐 3대0으로 완승을 거뒀다.
히샬리송의 이러한 맹활약 덕분에 토트넘은 약체 우려를 씻고, 선두그룹에서 시즌을 출발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그간의 부진이 히샬리송만의 문제가 아니라 팀 전술과 선수 조합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분석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2022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무려 6000만파운드(한화 약 1131억원)에 토트넘에 합류한 히샬리송은 해리 케인이 떠난 빈자리를 메워줄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히샬리송은 토트넘에서 금세 '욕받이' 신세가 됐다. 기대 이하의 골 결정력에 계속 부상을 달고 살면서 '실패한 투자'의 본보기로 지적됐다. 2024~2025시즌에는 EPL 15경기에 나와 단 4골(1도움) 밖에 넣지 못했다 .
때문에 올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당장 팔아야 한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히샬리송은 토트넘 잔류를 고집했다. 이런 태도마저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항상 비난만 받았던 건 아니다. 적어도 한국 팬들에게는 '손흥민 바라기'로 애증을 받았던 대상이다. 히샬리송은 비록 성적은 좋지 못했어도, 토트넘에서 늘 '손흥민 바라기'로 캡틴 손흥민에 대한 지지를 이어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흥민이 LA FC로 떠난 뒤에는 "당장 손흥민의 동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주장이었던 손흥민은 토트넘 최고의 레전드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듯 손흥민에 대한 애정과 추종을 이어가던 히샬리송이 정작 손흥민이 떠난 뒤에 자신의 잠재력을 펼치자 어쩌면 손흥민이 히샬리송의 억제기였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나오는 상황이다.
프랭크 감독은 히샬리송에 대해 "그는 파리생제르맹(PSG)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슈퍼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나는 항상 히샬리송을 좋아했다. 에버턴에서 뛸 때도 좋은 선수라고 생각했다"면서 "내가 토트넘에 합류했을 때 부상으로 고생해온 히샬리송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첫 출발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히샬리송의 활약에 대해서는 적장도 감탄하고 있다.
영국 매체 TBR풋볼은 17일 '토트넘 출신으로 번리를 이끌고 있는 스콧 파커 감독은 히샬리송의 두 번째 골에 대해 월드클래스급 피니시라고 극찬했다'며 '파커 감독은 토트넘이 아주 좋은 팀이자 번리에는 너무 강한 팀이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스포츠매체 디애슬레틱은 '히샬리송은 EPL의 수수께끼 같은 선수였지만, 지난주 파리 생제르맹과의 슈퍼컵 경기와 EPL 개막전을 통해 2023~2024시즌 활약 이후 가장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다'면서 '최근 토트넘 홈구장에서 선발 9경기 9골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왔다. 해리 케인을 떠오르게 하는 마무리를 보여줬고, 무엇보다 케인의 마무리 스타일과 닮았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손흥민을 보내고 화려한 홀로서기를 시작한 히샬리송이 과연 토트넘의 에이스로 끝까지 활약을 이어갈 지 주목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