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아프리카 대자연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국가 중 하나가 탄자니아다.
탄자니아는 면적이 약 94만5천㎢로 동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크고 한국의 9배가 넘는다.
북동부에 있는 아프리카 최고봉(5천895m) 킬리만자로산은 만년설과 함께 웅장함을 뽐낸다.
광활한 세렝게티 초원은 세계 최대의 야생동물 서식지다.
특히 키다리 초식동물 기린은 탄자니아를 상징하는 동물로 평화, 사랑, 화합을 상징한다.
탄자니아가 추구하는 평화로운 이미지는 자연환경뿐이 아니다.
곳곳이 무력 분쟁에 휩싸인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정치가 안정된 국가라는 점이 흥미롭다.
탄자니아는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내전을 한차례도 겪지 않았다.
국경을 맞댄 케냐,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등 8개국이 대부분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신음한 점과 대비된다.
또 탄자니아에서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전복된 사례가 없다.
독립 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5년마다 안정적으로 실시돼왔다.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국가처럼 탄자니아도 부족, 종교가 다양하다.
부족이 약 130개나 된다.
종교는 이슬람교 35%,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30%, 토속종교 35%로 추정된다.
국토는 본토인 탕가니카, 그리고 인도양의 흑진주로 불리는 잔지바르섬으로 이뤄졌다.
탄자니아가 아프리카에서 두드러지게 부족, 종교의 화합에 성공하면서 안정을 유지해온 비결은 무엇일까.
탄자니아의 '국부'로 존경받는 줄리어스 니에레레 초대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독립운동가 출신인 그는 총리를 거쳐 1964년 대통령에 오른 뒤 종교, 부족을 넘어 국민을 하나로 묶는 데 전력을 다했다.
니에레레 대통령은 독립 후 아프리카 반투어인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도입했는데 스와힐리어 확산은 탄자니아 국민의 정체성 확립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
1967년 아루샤 선언을 통해 토지 및 자산의 국유화, 집단농장 등 사회주의를 도입한 점도 주목된다.
집단농장에 여러 부족이 모여 살게 한 것은 부족의 배타성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었다.
또 그는 기독교 신도와 무슬림의 결혼을 장려함으로써 종교 갈등 완화에 노력했다.
탄자니아는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기념일을 모두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니에레레 대통령은 1985년 무슬림(이슬람 신자) 알리 하산 무위니에게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다.
현재 탄자니아는 지역별, 종교별로 권력을 분점하는 정치 체제를 갖고 있다.
사미아 술루후 하산 대통령이 연방정부를 이끌지만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인 잔지바르에는 후세인 므위니 자치정부 대통령이 따로 있다.
다만 독립 후 탄자니아혁명당(CCM)이 계속 여당을 유지하면서 사실당 '일당독재'라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탄자니아의 또 다른 문제는 경제다.
2023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천224달러(약 171만원·세계은행 통계)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국민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탄자니아 정부는 도로를 비롯한 인프라 구축, 정보통신기술(ICT) 투자 등으로 경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탄자니아가 앞으로 정치적 안정과 더불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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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