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또 한 명의 KBO MVP 출신이 빅리그 성공의 꿈을 접어야 할 처지가 됐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25일(이하 한국시각)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베테랑 우완투수 에릭 페디를 방출한다고 알렸다.
페디는 지난달 28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지명할당 조치를(DFA) 거쳐 애틀랜타로 트레이드된 지 한 달도 안 돼 다시 짐을 싼 것이다.
이적 후 첫 등판이었던 지난 7월 30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4⅔이닝 동안 5안타 2볼넷으로 4실점해 패전을 안은 페디는 가장 최근 등판인 23일 뉴욕 메츠전서 4⅓이닝 11안타 6실점하기까지 애틀랜타에서 5경기를 던져 1승2패, 평균자책점 8.10을 기록했다.
애틀랜타는 이날 페디를 내보내고 좌완투수 애런 버머를 IL에 올리면서 트리플A 우완투수 완더 수에로와 헌터 스트랜튼을 불러올렸다. 포스트시즌을 포기한 애틀랜타가 택한 내년 대비 행보다.
페디는 앞서 세인트루이스에서는 20경기에서 3승10패, 평균자책점 5.22로 부진을 보여 쫓겨나는 신세가 됐었다. 올시즌 성적은 25경기, 4승12패, 평균자책점 5.76.
2023년 NC 다이노스에서 20승6패, 평균자책점 2.00, 209탈삼진을 올리며 MVP에 오른 페디는 그 덕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1500만달러에 계약하며 빅리그 재입성에 성공했다.
복귀 첫 시즌은 만족스러웠다. 메이저리그 최약체 화이트삭스에서 사실상 에이스 역할을 하던 그는 지난해 7월 말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세인트루이스로 둥지를 옮겼다. 포스트시즌 싸움을 하던 세인트루이스가 페디를 원했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는 가을야구 문턱에서 주저앉았고, 페디는 31경기, 177⅓이닝, 3.30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후 하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페디가 지난해 허용한 타구의 평균속도는 88.6마일로 리그 평균보다 낮았다. 그러나 올시즌에는 90.4마일로 빨라졌다. 구위가 떨어지고 제구가 나빠졌다는 방증이다.
스탯캐스트는 올시즌 페디의 구종 가치를 직구를 하위 8%, 변화구는 20%, 체인지업은 7%로 각각 평가했다. 빅리그에서 던질 만한 공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드히트 비율이 작년 37.7%에서 올해 43.8%로 6.1%포인트나 높아졌다.
구위도 그렇고 제구도 바닥권이었다. 애틀랜타로서는 볼넷 13개를 내주고 삼진 13개를 잡은 투수에게서 희망을 보기는 어려웠을 터. 한국에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갈고 닦았다면서 의기양양하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랐던 페디는 이제 더 내세울 것이 없는 것 같다.
지난해 NC에서 26경기에 등판해 13승3패, 평균자책점 2.69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던 카일 하트도 올해 샌디에이고와 1년 150만달러 계약을 맺고 빅리그에 재입성했지만, 9경기에서 평균자책점 5.29를 기록한 채 7월 25일을 끝으로 트리플A로 내려갔다. 그는 트리플A 엘파소에서 선발이 아닌 구원투수로 던지고 있다.
KBO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옮겨 성공한 투수는 메릴 켈리(텍사스 레인저스) 한 명 뿐이다. 빅리그 경력없이 2015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한 켈리는 2018년까지 4년을 뛰었다. 페디처럼 MVP급 성적은 내지는 못했지만, 매년 성장세를 나타내며 빅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다.
2019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하며 빅리그의 꿈을 이룬 그는 올해가 풀타임 7년째다. 부상 때문에 잠시 주춤한 적은 있어도 실력 부진으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적이 없다. KBO가 육성한 '역수출품 1호'란 별명이 붙을 만하다. 올시즌에도 애리조나에서 9승6패, 평균자책점 3.22을 마크한 뒤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블루칩' 평가를 받으며 텍사스로 이적했다.
페디나 하트와 달리 켈리는 마이너리그 5년, KBO 4년를 거치며 기초부터 정상급 실력까지 차근차근 성장 단계를 밟아나갔다. 실력에 거품이 없었다는 얘기다.
페디가 다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려면 실력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시즌 막판 그를 데려갈 팀은 없다고 봐야 한다. 포스트시즌을 준비하거나 내년을 대비하는 팀이 실력이 '고갈된' 32세의 베테랑을 데려갈 이유는 없다. 올해 그의 연봉은 750만달러다. 결국 오프시즌 동안 FA 시장을 살펴봐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혹시 '재유턴'을 기다리는 KBO 구단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