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짧은 소설 모은 '종말까지 다섯 걸음'
SF 블랙 코미디 '독쑤기미: 멸종을 사고 팝니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캐리커처 = 단요 지음.
고등학생 주현은 스리랑카 출신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한국에서 태어났다. 늘 당당하고 시원시원한 성격 덕분에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낸다.
주현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승윤네 부모의 도움으로 강남 대치동 학원에 주말 강의를 들으러 가는데,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친구들이 많은 학교와 달리 대치동 학원에는 '진짜 한국인'처럼 보이는 하얀 피부의 학생들밖에 없는 것을 보고 이질감을 느낀다.
이민 2세대 청소년이 겪는 정체성 혼란과 차별, 소외감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단요 작가의 장편 청소년소설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을 다룬다.
주현의 친구들은 필리핀 어머니를 둔 요한을 '동남아'라고 부른다. 승윤의 아버지는 주현에게 "조만간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이 활약하게 될 것"이라고 격려하듯 말하지만, 사실 주현은 한국에서 태어나 이주민이 아니고 주현 어머니의 모국인 스리랑카는 동남아가 아닌 남아시아에 있다.
이 같은 풍경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곱씹어보게 한다.
창비. 168쪽.
▲ 종말까지 다섯 걸음 = 장강명 지음.
장강명의 엽편소설 20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부정', '절망', '타협', '수용', '사랑' 5개의 키워드로 구분한 다양한 주제와 장르, 형식의 소설이 실렸다.
각 키워드 첫 번째에 배치된 소설들은 가까운 미래 소행성 충돌로 멸망을 앞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종말을 부정하고'부터 '마침내, 종말을 사랑하고'까지 다섯 편은 인류 멸망을 앞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표정을 담아냈다.
영주의 눈 밖에 나서 마녀 사냥을 당하는 가족 이야기를 다룬 '마녀재판', 2033년 신문사가 한국 대표 소설가들에게 한국 사회를 담은 소설을 청탁하는 '소설, 한국을 말하다'도 수록됐다.
장강명은 '작가의 말'에서 "대단한 야심이나 목적의식을 품고 시작한 글은 아니지만, 쓰다 보니 재미있었다"며 짧은 분량의 소설을 집필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어깨 힘 빼고 편하게 써도 괜찮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상쾌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212쪽.
▲ 독쑤기미: 멸종을 사고 팝니다 = 네드 보먼 지음. 최세진 옮김.
영국 작가 네드 보먼의 장편 SF(과학소설)로, 생물 멸종을 허용하는 일종의 허가증인 '멸종 크레딧'이 발행되는 가까운 미래 이야기다.
멸종 크레딧은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국가와 기업은 멸종 크레딧이 허용하는 만큼 생물을 멸종시킬 수 있지만, 거꾸로 생태계 보호 활동을 하면 크레딧을 추가로 받을 수 있으며, 이 크레딧을 다른 국가나 기업에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멸종 크레딧 가격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멸종되는 생물은 늘어나기만 한다. 생물을 멸종시켜도 돈만 내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의 풍조가 만연해진다.
광업 회사에서 일하는 마크 핼야드는 멸종 크레딧 가격이 급락할 것이라 예상하고 회삿돈으로 공매도하는데, 예상과 달리 크레딧 가격이 올라 거액을 잃을 위기에 놓인다. 손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핼야드가 담당한 사업 때문에 멸종한 물고기 독쑤기미 개체를 찾아야 한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현실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로, 경제 논리에 매몰돼 아무렇지도 않게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과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소설에 등장하는 멸종 크레딧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도입됐으나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탄소배출권을 연상시킨다.
소설은 2023년 영국의 SF 문학상인 아서 클라크 상을 받았으며 영상화가 확정됐다.
황금가지. 408쪽.
jaeh@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