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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진실을 은폐하는 말…'더블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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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기폭제 항미전쟁…'기억된 전쟁, 만들어진 중국'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 더블스피크 = 윌리엄 러츠 지음. 유강은 옮김.
정치인의 말속에서 진실을 건져 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겹의 의미를 함축해 놓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말의 기술이 때론 대중을 속이기 위해 사용된다. 미국 럿거스대 영문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를 '이중화법'(더블스피크)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정치인의 언사, 정부의 공식 담화, 기업 광고 문구, 언론 보도 등 다양한 곳에서 이중화법이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풍부한 사례를 통해 권력자들이 책임 회피와 여론 조작을 위해 어떻게 말을 조작해 왔는지 보여준다.
가령,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생명의 불법적 또는 임의적 박탈"이라고 표현하고, 군사 작전의 민간인 희생을 "부수적 피해"로 얼버무리는 식의 완곡어법이 대표적인 예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런 말들이 실은 진실을 희석하고 거짓을 은폐하는 도구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월가 쪽도 마찬가지다. 월가의 탐욕 탓에 금융사들이 정크본드를 양산해 시장을 무너뜨린 뒤에도 그들은 '주식시장이 무너졌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시장의 후퇴", "기술적 조정", "거래량 감소" 등으로 완화해서 표현한다.
저자는 "이중화법은 음험하다"며 "이는 사람들과 사회 집단 간의 소통이라는 언어의 기능을 오염시키고 결국은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정치 연설의 미사여구, 관료 조직의 난해한 전문용어, 광고 속 과장된 표현 등 다양한 형태의 더블스피크가 모두 진실을 흐리는 공범이라고 비판한다.
교양인. 420쪽.

▲ 기억된 전쟁, 만들어진 중국 = 한담 지음.
민족 비극인 '한국전쟁'을 중국은 '항미원조 전쟁'이라 부르며 건국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국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서사로 다뤄왔다.
목포대 동아시아문화전공 조교수인 저자는 문학과 영화·연극 등 문화 텍스트를 통해 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시대마다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한다.
1950년대 항미원조는 군사 전투를 넘어 문학·영화·연극을 통한 문화 선전으로 확산했다. 1960~70년대에는 문화대혁명 속에서 '혁명적 승리'로 재구성됐다. 개혁·개방 시기에는 잠시 주춤했으나 패권을 놓고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2020년대부터는 부활해 '애국'과 '저항'의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항미원조는 그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 기억으로 부활해 중국인의 저항적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현재진행형 담론이라고 말한다.
나름북스. 420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