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중략)…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作 '빈집')
시인이 노래한 빈집은 사랑의 상실을 간직한 추억의 공간으로 그려졌지만, 현실 속의 빈집은 앙상하다 못해 처참한 모습을 보인다.
사람이 떠난 빈집은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안전을 위협하는 우범지대로 전락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가파른 인구감소와 인구이동으로 농어촌을 중심으로 빈집이 늘어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소도시까지 빈집이 확산하는 추세다.
방치된 빈집은 동네를 넘어 지역 소멸로 이어질 수 있어 국가 차원의 대책과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
◇ 늘어가는 빈집…전남 15%·제주 14%·경북 12% 비율
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전국 빈집은 2021년 139만5천256가구에서 2022년 145만1천554가구, 2023년 153만4천919가구, 2024년 159만9천86가구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빈집의 비율은 인구 소멸이 극심한 전남이 15%(12만6천605가구)로 가장 높았고, 제주특별자치도 14.2%(3만7천212가구), 경상북도 12.5%(14만774가구) 순으로 나타났다.
부산·광주·대구·인천·울산·대전 등 주요 광역시의 빈집 비율은 5∼9%로 나타났으며 서울도 3.2%(159만9천86호)에 달해 도시와 농촌 구분 없이 전국적으로 빈집이 느는 추세다.
지자체들은 건물 소유주와 협의해 활용 가능성이 낮은 빈집을 위주로 철거하고 있지만, 빈집은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사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빈집 증가의 원인은 소유자 사망이 78%로 가장 많았고, 거주지 변경 20%, 기타 도시 지역 이주가 뒤를 이었다.
빈집 정비에도 불구하고 빈집 증가 속도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어서 지역 사회와 함께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방치된 공간에 주민들 '아우성'…자연재해도 취약
빈집은 단순히 사람이 떠난 방치된 공간에 그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오랫동안 비운 집은 경관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 쓰레기 방치, 야생 동물 서식, 해충 번식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최근에는 극한 호우 등 자연재해에 취약해 지붕이 붕괴하거나 담장이 내려앉는 등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빈집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개선을 촉구하는 민원도 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3년(2022∼2024년)간 민원정보분석시스템에 수집된 빈집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 2022년 598건이던 빈집 관련 민원은 2024년 989건으로 약 1.7배 증가했다.
철거와 재활용 등 체계적인 빈집 정비가 필요한 이유다.
◇ 위기를 기회로 승화…주목받는 빈집 재생 사례
인구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전남지역은 최근 빈집을 이용해 지역 재생을 도모하는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강진군은 2022년부터 소유주로부터 빈집을 무상 임대해 리모델링한 뒤 월 1만원에 빌려주는 '강진품애' 사업을 하고 있다.
입주자 공모를 하는데 가구마다 평균 17 대 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반응이 좋다. 현재까지 55가구에 147명이 입주했다.
나주시는 농촌 빈집을 귀농 귀촌인의 거주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장흥군은 폐교 부지에 유학 마을을 조성해 농촌 유학생 가족들에게 임대하고 있다.
지자체와 민간이 나서 빈집을 재활용하고 있지만, 빈집 정비는 지자체가 담당하는 자치 사무로 규정돼 재정 투입에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방소멸에 따른 빈집 문제 대응을 위해 농어촌빈집정비특별법과 빈건축물정비특별법을 제정해 빈집 정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빈집 소유주에게는 철거 후 세 부담을 완화해주고 빈집 거래 플랫폼을 활성화해 활용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도시재생과 연계, 빈집을 활용해 낙후한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민문식 광주도시재생공동체센터 대표이사는 "빈집이 많은 곳은 노후화한 곳으로 문화 활동이나 돌봄, 학습 등의 수요가 많다"며 "지역 주민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관련 전문가와 중간 지원 조직이 행정과 함께 참여하는 협치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inu21@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