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승숙 소설집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미래'·민병훈 장편 '어떤 가정'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삼체 0: 구상섬전 =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도 제작된 중국 작가 류츠신(62)의 장편 SF(과학소설) '삼체'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장편으로, 시간상 앞선 독립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천둥이 치는 날 천은 열네 번째 생일을 맞아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데, 농구공 같은 크기와 모양에 붉은빛을 띤 불가사의한 물체 구상섬전(球狀閃電)이 나타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후 과학도가 되어 이 기이한 현상을 연구한 천은 동료들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구상섬전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 이를 통해 인류의 과학 지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한다.
'삼체'가 총 3권에 달할 정도로 분량이 길고 등장인물이 많은 것과 달리 이 소설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짧은 분량 덕에 쉽게 읽힌다. '삼체'를 읽기 전 입문서로 추천할 만하다.
이 소설은 '삼체'가 처음 연재되기 1년 전인 2005년 출간됐다. 원서 제목은 '구상섬전'이지만, 세계적으로 더 알려진 '삼체'와의 관련성을 고려해 한국어 번역본에선 '삼체 0'이라는 제목이 추가됐다.
다산북스. 464쪽.
▲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미래 = 염승숙 지음.
2005년 데뷔해 올해 20주년인 작가 염승숙(43)의 다섯 번째 소설집으로, 2021년부터 발표해온 여섯 편의 단편을 실었다. 수록작들은 치열한 생계의 최전선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포착했다.
'프리 더 웨일'은 남편 상우가 죽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수경의 이야기다. 무례한 직장 상사의 언사를 하루하루 견디는 수경은 자기 삶을 끊임없이 곱씹으며 자라는 아이를 통해 미약하나마 희망을 발견한다.
'믿음의 도약'은 철과 영 부부가 전셋집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임대인의 연락을 받고 집을 장만해 이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내 집 마련이라는 기쁨보다는 어려운 경제 형편으로 인한 답답함이 숨을 조이듯 다가온다.
이 밖에 명예퇴직 후 외로운 나날을 보내는 노인의 삶을 다룬 '구옥의 평화', 순탄한 미래를 위해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연인의 단점을 못 본 척하는 여성의 이야기 '진영의 논리' 등이 실렸다.
각 수록작은 서로 독립적이나 일부 작품은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프리 더 웨일' 수경의 직장 상사는 '진영의 논리' 진영의 남자친구이며, '구옥의 평화' 구옥의 딸이 진영이다.
문학과지성사. 296쪽.
▲ 어떤 가정 = 민병훈 지음.
아버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뒤 남은 가족은 서로를 탓하며 사사건건 충돌하다가 차츰 멀어졌다. 작가가 된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펴낸다.
소설을 발표한 지 10개월쯤 지났을 무렵 인연을 끊다시피 했던 누나는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할 예정이며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누나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은 '나'는 여자친구 준과의 관계에 관해 생각해본다. '나'는 준의 가족들과도 인사했고 결혼까지 생각했으나 언젠가부터 조금씩 관계가 엇나가는 것을 느낀다.
2015년 데뷔한 작가 민병훈(39)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가족의 해체와 구성을 둘러싼 여러 겹의 이야기가 쌓여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 뒤에 남겨진 가족들이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양한 결로 그려냈다. 가정을 꾸리는 누나와 결혼을 망설이는 남동생 두 사람의 엇갈린 행동 모두 설득력 있게 표현돼 있다.
문학동네.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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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