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미(널) 러브' 출간…"범죄적인, 또는 부드러운 사랑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보통 단편소설집을 엮을 때 수록된 작품 제목을 책의 제목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소설집을 위한 제목을 만들었어요. 부드러운(크리미) 사랑이기도 하면서 범죄적인(크리미널) 사랑이기도 하다는 뜻이죠."
데뷔 9년 만에 첫 소설집 '크리미(널) 러브'를 펴낸 작가 이희주(32)는 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제목에 담긴 독특한 의미를 들려줬다.
그는 "부드러움과 범죄는 어쩌면 서로 반대 극단에 놓은 것 같은데, 서로 다른 두 말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수식하면 어떻게 읽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희주는 이어 "이중적인 제목을 지으면 독자들이 각자 다르게 읽게 된다"며 "수용자가 저마다의 생각을 갖고 완성하는 것이 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8개를 '크리미(널) 러브'에 실었다.
이 가운데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최애의 아이'는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는 30대 직장인 우미가 최애(最愛·가장 사랑함) 남자 아이돌 유리의 것이라며 판매되는 정자를 사서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담았다.
아이돌의 정자까지 상품이 되고 팬이 이를 1억원이나 주고 사서 임신한다는 내용은 물론 허구다. 그렇지만 연예인이 마치 상품처럼 소비되는 현실에서 착안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희주는 "아이돌이 개인의 인간성 또는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을 판매하는 것이 오늘날 사회의 모습"이라고 짚으며 "그게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고 설명했다.
우미는 아이를 낳은 뒤, 자신이 산 정자가 유리의 것이 아니라 자기 유전자를 퍼트리고자 하는 정치인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분노한 우미는 파괴적인 행동으로 주변을 놀라게 한다.
'최애의 아이'를 읽고 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이돌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성애란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는지 등의 질문과 직면하게 된다.
이희주는 "저는 항상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며 "새로운 질문을 발생시키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궁리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제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려면 작가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져서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크리미(널) 러브' 수록작들은 이처럼 아이돌과 팬덤 문화를 다룬다. 이희주가 데뷔작인 장편소설 '환상통'부터 천착해온 소재다.
'0302♡'는 남자 고등학생 유리가 사거리의 미소년이라고 불리는 불가사의한 존재를 만나 소원을 빈 끝에 잘생긴 외모로 거듭나 아이돌이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사과와 링고'는 비정규직으로 근근이 먹고살면서 매사에 근검절약하면서도 뮤지컬 관람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사라의 이야기다.
이희주는 "아이돌과 팬덤 문화는 저한테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라서 계속 쓰게 된다"며 "어떤 작가는 모두에게 가닿는 보편적인 글을 쓰지만, 저는 한 영역을 깊이 파고드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돌과 팬덤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이야기가 있다. 경제적 파급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 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그래서 계속 소재로 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희주는 작년 장편소설 '성소년' 판권이 미국 하퍼콜린스, 영국 팬 맥밀런에 각각 1억원대의 높은 선인세에 판매되며 주목받았다. 외국 출판사에서 K-팝을 소재로 다룬 소설을 수소문했고, 국내 출판계로부터 이희주의 작품을 추천받아 계약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올해 들어 젊은작가상과 이효석문학상 대상까지 받으며 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비결을 묻자 이희주는 "꾸준함 때문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제 소설은 아이돌을 소재로 다루는 점에서 보편적이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도 일반적이지 않아 독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타협하지 않고 본인 방식을 고수했더니 역으로 팬들이 생긴 것이라고 이희주는 풀이했다.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편하도록 제 스타일을 고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제 고집대로 계속 쓰다 보니까 차츰 인정해주시는 분들도 생겨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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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