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은 '불멸의 투수' 최동원이 작고(1958~2011)한지 14주기가 되는 날이다. 13일 부산 사직구장앞 최동원 동상앞에서는 변함없이 그를 기리는 많은 팬들이 추모행사를 갖고 '한국시리즈 4승'에 빛나는 불굴의 정신을 다시한번 일깨운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 야구팬들은 그가 떠난지 10년이 훨씬 넘도록 왜 그를 추모할까? 한가지 목표를 위해 온몸을 불사른 '투혼'이 시대를 초월해 횃불처럼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1984년 가을로 돌아가보자. 삼성 라이온즈는 롯데 자이언츠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택했다. '김일융-김시진'의 마운드는 최강이어서 에이스 최동원 한명뿐인 롯데가 손쉬운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9월 30일 대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롯데는 박용성의 홈런포와 최동원의 완봉 역투에 힘입어 삼성을 4대0으로 완파했다. 10월 1일 열린 2차전에서는 김일융의 완투에 눌려 2대8로 졌으나 홈으로 돌아온 3일 3차전에서는 '무쇠팔' 최동원의 완투로 3대2 쾌승, 시리즈 2승1패로 우위를 점했다.
4일 4차전에서는 김일융의 역투에 한점도 빼앗지 못하고 0대7로 완패, 2승2패의 '장군멍군'이 됐다. 잠실의 6일 5차전에서는 최동원이 3연속 완투로 분전했으나 실책 3개로 무너지며 2대3으로 역전패, 2승3패로 밀렸다. '벼랑 끝'의 6차전에서는 선발 임호균에 이어 5회부터 나온 최동원의 구원 역투에 힘입어 6대1로 완승, 시리즈 3승3패로 시소를 이뤘다.
3만5000명이 꽉 들어찬 운명의 7차전, 롯데는 최동원의 눈물겨운 완투와 유두열의 눈부신 3점 홈런에 힘입어 6대4로 역전승, 한국시리즈 우승의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렸다. 최동원은 3완투승(완봉 1회), 1구원승으로 154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도 없는 '시리즈 단독 4승'의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다.
여기서 잠시 최동원의 운(運)을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인생에 세 번의 운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최동원은 한 경기에서 세 번의 운이 몰려 찾아왔다.
첫번째 운. 원래 7차전은 8일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하루 연기됐다. 비로 하루를 쉰 덕분에 최동원이 6차전 구원 피칭을 한 피로를 씻고 7차전에서 구원아닌 선발로 나갈수 있었다.
이번에는 두번째 운. 강병철 감독은 7차전 오더에 '5번 박용성-6번 유두열' 타순을 제출했다. 하지만 공식 기록원이 착각, '5번 유두열-6번 박용성'의 타순을 전광판에 새겼다. 경기전 잘못을 알아차린 기록원이 강 감독에게 '수정'을 제의했으나 강감독은 '그대로 둘 것'을 지시해 5번 유두열로 확정됐다.
다음은 세 번째 운. 최동원은 6차전까지 32이닝을 던진데다 7차전에서는 7회까지 4실점하며 구위가 현저히 떨어졌다. 이때 6차전까지 17타수 1안타로 침묵했던 유두열이 8회초 기적의 3점포를 날렸다. 이 한방으로 최동원은 특유의 강속구를 회복해 8,9회를 무실점으로 막아 잠실벌에 '부산갈매기'가 우렁차게 울려퍼지게 했다.
요즘 국내외적으로 경제사정이 어려워 미래를 짊어질 2030들의 어깨는 축 처져 있다. 힘든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최동원이 한국시리즈때 덕아웃을 힘차게 울린 "함~해보입시더~"를 외치면 어떨까.
김수인 최동원 후원회장/야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