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아람 기자] 역이민 후 산골에서 꽃을 피우다, 가슴에 아들을 묻은 한 여인의 이야기
오는 15일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에서는 깊은 산골에서 꽃을 키우며 살아가는 정데레사 씨의 이야기를 담은 '데레사가 돌아왔다' 편이 시청자를 찾는다.
# 데레사가 돌아왔다
정데레사(63) 씨의 아침은 분주하기 짝이 없다. 고양이 두 마리는 물론이요, 닭, 개, 염소, 그리고 당나귀까지 동물 식구들 아침밥을 챙기는 것만도 하세월이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꿈꿨던 로망을 실현하며 어머니 김정순(86)과 함께 경북 영천 산골에 사는 데레사 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더랬다. 둘째가 돌을 앞두고 있던 무렵, 짧았던 결혼 생활을 뒤로 하고 연년생 두 아들을 데리고 이민 길에 올랐던 데레사 씨. 삶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떠났던 이민 생활은 혹독했다.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며 키워낸 아이들이 독립하고 데레사 씨는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지 고민하게 됐다. 자연스레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고 돌아가서 어머니를 모시자는 생각에 역이민을 선택했다. 어머니 역시 젊은 나이에 남편과 헤어지고 외동딸 데레사 씨마저 어릴 적에 아빠에게 보내 평생을 혼자 살아오셨던 상황. 일찍 어머니 품을 떠났던 데레사 씨는 흰머리가 성성해진 나이에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 가슴에 묻은 아들
어머니를 모시고 처음엔 왜관에 정착했던 데레사 씨. 예쁜 전원주택을 짓고 작은 카페도 열었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고군분투하며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던 와중에 미국에서 날벼락 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26살 젊은 나이에 큰아들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것. 데레사 씨가 한국에 돌아온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아이들을 두고 온 것이 잘못된 선택인가 한없이 자책했고, 삶의 의미가 사라지며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됐다.
자식 앞세운 마당에 밥 먹고 웃는 것도 죄스러워 사람들을 피해 숨고만 싶었다.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카페도 집도 정리하고 1년 여전 영천으로 들어왔고, 생전 농사라곤 지어본 적 없지만 작은 하우스를 지어 꽃 농사를 시작했다. 바쁘게 몸을 놀려 꽃을 키우고 동물들을 키우다 보니 절망스럽던 마음이 차츰 잦아들고 조금씩 살아갈 힘도 얻게 됐다. 여전히 마음은 아프지만 이젠 아들을 가슴에 묻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 늦깎이 꽃 농부와 팔순 노모의 산골 일기
한국에 돌아와 다시 어머니와 한집에 살게 된 데레사 씨. 오랜 시간의 강을 건너 어머니와 함께하는 일상은 녹록지 않았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쳤다. 그래서 영천으로 삶터를 옮길 때 모녀는 '따로, 또 같이' 사는 삶을 택했다. 한 울타리 안에 작은 집 두 채를 지어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살기로 한 것. 식사도 굳이 꼭 같이하려 애쓰지 않고 각자의 사정에 맞게 하고 있다. 이웃해서 따로 살다 보니 훨씬 재밌고 관계가 편안해졌다.
이제 1년이 조금 넘은 꽃 농사는 오롯이 데레사 씨의 몫. 아직 시행착오가 많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꾸준히 서울 꽃시장으로 출하하고 있다. 이웃들과도 많이 친해져 짬이 나면 함께 모여 막걸리도 마시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움도 받는 등 따뜻한 한국의 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중이다.
더위가 물러가는 여름의 끝자락, 척박한 땅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는 데레사 씨의 꽃밭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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