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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동쪽끝 경주서 열리는 APEC…"새 실크로드 출발점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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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여년 전 세계 교류 시발점이자 종착지 역할…"21세기에 재현"
"대한민국이 아시아·태평양 우호적 교류·협력 견인하는 계기"


(경주=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실크로드는 통상 기원전 8∼9세기부터 근대까지 중국 심장부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를 거쳐 지중해까지 이어진 무역로를 일컫는다.
지금까지도 관련 학계에서 실크로드 동쪽 끝, 즉 시작점을 중국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학자를 중심으로 실크로드의 시작점이 경주까지 연장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이어지고 있다.
그 근거는 다양하다.
우선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고대 로마 등지에서 유통된 유리 공예품 등이 적잖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신라시대 왕이나 귀족들이 당시 서양 국가들과 교류에 의해 유입된 각종 외래 문물을 접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일본 미술사학자 요시미즈 츠네오가 저술한 '로마문화의 왕국, 신라' 같은 책에는 로마제 유리 제품과 황금 보검 등이 경주에서 출토된 사례를 토대로 고대 로마와 신라의 교류가 활발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로마에서 경주까지 육로로 6∼8개월이면 교역품 수송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무슬림이 신라에 집단 거주했다는 기록도 적지 않다.
무슬림 역사학자 마수디가 서기 10세기 무렵에 남긴 저서에는 "이라크인과 다른 외국인들이 신라를 조국으로 삼아 정착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비슷한 시기 페르시아의 이븐 루스타는 저서 '진귀품 목록'에서 "금이 풍부한 신라라는 나라가 있으며 그곳에 정착한 무슬림들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옛 기록이 아니더라도 경주에 가면 어렵지 않게 무슬림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신라 원성왕(재위 785∼798년) 무덤인 괘릉(掛陵) 묘역에는 서아시아 사람의 용모를 가진 무인(武人) 석상이 서 있다.
눈이 움푹 들어가고 코가 크며 잘 다듬은 턱수염, 이슬람식 예배 모자 등 영락없는 서아시아 사람이다.
이를 토대로 무슬림들이 이미 서기 8세기에 경주 등지에서 집단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항저우 등에서 모여 살던 무슬림 상인들이 일주일이면 도착하는 신라를 자주 찾았고, 그중 상당수가 신라 땅에 터를 잡았다.
이들은 경주 등 신라 땅에 살며 중국 당나라와 활발한 무역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미 1천여년 전부터 실크로드라는 세계 교류의 시발점이자 종착지 역할을 해 온 경주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행사가 열리는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경주가 그 옛날 아랍과 중앙아시아, 중국과 이어지며 경제, 문화 등 각종 교류의 시발 및 종착지 역할을 해 오던 것을 21세기에 재현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러시아, 중국, 북한이 전에 없이 밀착해 미국 등 서방과 대치하는 양상이 노골화하는 등 불안한 국제 정세 속에서 열리는 이번 경주 APEC은 현재의 국제 질서가 새 국면을 맞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특히 차기 APEC이 중국에서 열리게 되면서 이번 경주 APEC이 내딛는 아시아 태평양지역 경제 협력의 큰 발걸음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관심을 끈다.
경주 APEC 관계자는 "이번 경주 APEC은 어느 때보다도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열린다고 할 수 있다"며 "경주가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우호적인 교류와 협력을 견인하는 새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yongmi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