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수사서 불거진 인사 청탁 의혹 여파…해묵은 정교분리 위반 논란도
역대 대통령이 사회적 메시지 던진 공간…"새 소통 채널 모색하자" 제언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국가조찬기도회 주요 인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청탁성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56년간 이어진 조찬기도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통령 등 정치권 유력 인사가 참석하는 것이 관행이 된 가운데 기도회가 정교 유착의 통로가 됐다는 비판이 진보 성향의 교계 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사무국 앞에서 국가조찬기도회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국가조찬기도회 개최 단체인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이봉관 회장과 이배용 부회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측에 금품을 주고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최근 특검 수사에서 불거진 것을 거론하고서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종교가 정치 권력에 유착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노골적인 시도"라고 비판했다.
두 단체는 또 종교 의례에 '국가'라는 수식어를 붙이거나 대통령 등 주요 정치인이 참석하는 것은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개신교·불교·원불교·천도교·천주교 계열 종교단체와 학술단체 등 28개 단체로 구성된 범종교 개혁 시민연대도 최근 "국가조찬기도회는 신앙의 공간이 아닌, 부패한 정치와 경제 권력이 결탁하는 위선적인 사교의 장으로 전락했다"며 "국가조찬기도회를 즉각 폐지하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2022년 3월 김건희 여사에게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등 고가 장신구를 주고 맏사위인 검사 출신 박성근 변호사의 인사를 청탁했다고 최근 특검팀에 자수했다.
역사학자인 이 부회장은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금품을 주며 청탁해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아직 수사 중이어서 두 사람을 둘러싼 의혹이 사실로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기도회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국가조찬기도회의 정교분리 위반 논란은 예전부터 있었다.
헌법 제20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정교분리 원칙을 기술하고 있는데 종교 색채가 뚜렷한 단체가 '국가'를 내걸고 정치인을 정례적으로 초청해 기도회를 여는 행위가 특정 종교에 대한 우대 혹은 종교단체의 정치인 지지 행위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2012년 ㈔한국헌법학회 학술지 '헌법학연구' 제18권 제1호에 실은 '국가조찬기도회의 헌법적 문제'라는 논문에서 "공직자(특히 선출직 공무원)가 종교단체의 행사에 공직자의 신분으로 참여하는 것은 종교인 또는 종교에 의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므로 정교분리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지만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고려할 때 국가조찬기도회를 비롯한 종교 활동을 금지할 수는 없으며 이 행사가 어떻게 될지는 결국 주최 측이나 참여 정치인들의 선택에 맡겨질 전망이다.
아울러 오랜 기간 국가 지도자가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국가조찬기도회의 의미를 최근 불거진 청탁 의혹이나 종교적 색채 때문에 전부 부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물론이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박근혜·문재인·윤석열 등 역대 대통령은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꾸준히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지도자들이 모여 국가와 민족의 부흥과 안녕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고자 한다"고 설립 이념을 밝히고 있다.
일련의 논란과 관련해 성석환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는 "권력을 대하는 기독교의 태도는 성경 말씀처럼 견제하거나 잘못된 길을 갈 때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예언자적 기능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교계의 공적 기관(주요 교단)들이 더 이상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여하지 말고 새로운 방식으로 정부와 소통하는 채널을 공공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사무국 측은 기도회 폐지 주장에 대한 일각의 견해를 묻는 연합뉴스 요청에 회신하지 않았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6년 2월 서울 조선호텔에서 국회의원 20여명이 함께 기도하고 '국제기독교지도자협의회(ICL·International Christian Leadership) 한국국회의원 조반기도회'를 결성하면서 그 기반이 마련된 것으로 전해진다.
2년 후인 1968년 5월 8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기도회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참석했고 이것이 제1회 국가조찬기도회로 기록된다. 처음부터 국가조찬기도회라는 이름을 쓴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1968년 시작 당시에는 '대통령 조찬기도회'라고 명명하다가 1976년 '국가조찬기도회'로 명칭을 바꿨다.
sewonle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