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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일본은 다르다…아프리카 원조 안 줄이고 투자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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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화 서울대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선임연구원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국제사회 뉴스의 중심에는 줄곧 미국과 중국 뉴스가 자리해왔다.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 한국과 미국 간 정상회담이 이어졌고 북·중·러의 만남도 한반도의 주요 사건으로 부상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아프리카를 둘러싼 주요국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국제 질서는 다극화 경쟁으로 정의된다. 서구 국가의 아프리카 지원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제9차 도쿄아프리카개발회의(TICAD 9)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과 지속적이고 대등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는 새로운 대(對)아프리카 정책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도쿄아프리카개발회의(TICAD)는 1993년 냉전 종식 후 아프리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약화하던 시기에 출범했다. 아프리카 국가와 유엔, 아프리카연합(AU) 등이 공동 주최하는 다자 협의체로 시작됐다. 출범 초기는 5년 주기로 열렸으나 2013년부터는 3년 주기로 변경됐다. 개최지는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2016년과 2022년에는 각각 케냐 나이로비와 튀니지 튀니스에서 회의가 열렸다. 차기 제10회 TICAD는 다시 아프리카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 8월 20일부터 22일까지 요코하마에서 열린 제9차 TICAD 개회식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아프리카를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정의했다. 이어 일본과 아프리카가 혁신과 기술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함께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회의는 3일간 경제, 사회·개발 협력, 평화·안보라는 세 가지 주요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특히 ▲ 아프리카 역내 및 역외의 지역 통합과 연결성 ▲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 ▲ 청년과 여성의 역량 강화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또 일본과 아프리카 기업 간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개가 넘는 주제별 네트워킹 행사와 300개의 부스가 운영되는 등 다양한 교류와 협력의 장도 마련됐다.
경제 분야에서 일본은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를 통한 연결성 강화를 적극 지지한다. 이 연장선으로 일본 정부는 '인도양-아프리카 경제권 구상'을 발표했다. 이는 아프리카와 인도양 지역 간 광역 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말라위, 잠비아, 모잠비크를 이을 수 있는 나칼라 회랑(Nacala Corridor)의 물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사업이 실현되면 아프리카 역내 외 교역과 투자가 활성화될 뿐 아니라, 일본이 아프리카로부터 광물 자원을 더 짧고 효율적인 해상 경로를 통해 수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공공-민간-학계 공동 연구회를 설립해 일본과 아프리카 간 경제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AfCFTA 지원을 확대했다. 또 케냐 등 8개국으로 구성된 지역경제공동체인 동아프리카공동체(EAC)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사전 검토에도 착수할 계획임을 밝혔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과 협력해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약 55억달러(약 7조6천억원) 규모의 '아프리카 민간 부문 지원 구상'(EPSA)과 약 15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를 동원해 아프리카 민간 분야의 성장과 금융 접근성을 높일 방침이다. 이를 통해 일본과 아프리카 기업이 공동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또 향후 3년간 아프리카 현지에서 3만명의 인공지능(AI) 및 첨단기술 인재를 양성해 청년 고용을 늘리고,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사회·개발 협력 분야에서는 보건, 백신 및 연구개발을 위한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Africa CDC)의 재정 지원과 함께 약 5억달러(약 7천억원) 규모의 백신 공급 지원을 약속했다.
평화·안보 분야에서는 분쟁 해결 및 평화유지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과 더불어 아프리카연합(AU) 산하에서 곧 운영을 시작할 아프리카인도적지원청(AHA)의 역량 강화에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혁과 관련해 아프리카의 대표성과 발언권 확대를 지지하며 투명하고 포용적인 개혁을 촉구했다.

이번 제9회 TICAD는 아프리카 49개국 대표와 다수의 국제기구 관계자가 참석했다. 34개국의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이 일본 총리와 양자 회담을 가졌다. 회의 기간 300건 이상의 민관 협력 문서가 체결됐다. 일본 정부는 향후 3년간 약 80억달러(약 11조1천억원)에 달하는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주요국이 정부개발원조를 급격히 축소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원조를 줄이지 않고 TICAD를 통해 아프리카를 지원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특히 일본이 아프리카를 단순한 원조 대상이 아닌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상호 존중과 공동 성장의 비전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대(對)아프리카 협력 분야에서 꾸준한 지원과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조준화 박사
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선임연구원(창립멤버), 신한대 겸임 교수, 영국 런던대(SOAS) 정치학 박사, 연세대·한국외국어대 연구교수 및 강사 역임. 주요 연구 분야는 아시아-아프리카의 국가 간 외교 관계, 아프리카 개발협력, 아프리카 선거, 분쟁, 이주 난민 등.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