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투구를 할 수 없는 투수의 1군 등록. 그의 동행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지만, 사실 본질은 확대 엔트리를 다 채울 필요도 없는 히어로즈의 무기력한 현실이다.
최근 키움 히어로즈가 재활 중인 투수 안우진을 1군 엔트리에 등록하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던 안우진은 17일 소집해제 후 팀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가 근무 중에도 성실하게 투구 프로그램을 소화해왔기 때문에 복귀 이후 한두경기라도 등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난달초 2군 구장에서 자체 청백전 등판을 마친 후 추가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넘어지며 오른쪽 어깨를 다쳤고, 수술대에 올랐다. 이대로 올 시즌은 아웃이고 내년초 복귀도 100%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을 던질 수 없는 상태인 투수를 엔트리에 등록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를 두고 불편한 시선과 비판의 목소리도 당연히 따라왔다. 2군 코칭스태프의 지시로 인해 추가 훈련을 받다가 다쳤기 때문에 미안한 구단이 보상의 의미로 등록을 해주는 것 아니냐, 안우진이 포스팅 요건을 갖추기 위해 내린 결정 아니냐는 의심도 뒤따랐다.
다른 선수가 등록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키움은 확대 엔트리 시행 이후로도 계속 엔트리에 1-2자리 여유를 두고 있었다.
설종진 감독대행은 "우리는 전반기부터 신인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고, 최근 엔트리에 있는 선수를 많이 쓰지 못했다. 기존 선수들도 다 못 뛰는데 굳이 그 한자리에 다른 선수를 부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안우진을 등록하면서 젊은 선수들이 뛸 수 있는 자리가 없어졌다는 지적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1군 감독이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안우진은 "등록 일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계산해보지 않았다"면서 "선수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순수한 의도임을 강조했다.
사실 안우진을 등록하느냐, 아니냐는 두번째 문제다. 실제로 지금 키움에서 안우진만큼 영향력을 가진 경력있는 투수가 많지 않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진짜 문제는 확대 엔트리조차도 채울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한 뎁스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키움 자체다.
시즌 초반부터 신인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기 때문에 확대 엔트리를 전부 다 쓸 이유가 없었다는 감독의 말은 바꿔 말하면 프로팀의 존재 근간까지 흔들 수 있는 표현이다. 특히나 저연차 선수들에게는 1군 등록일수 하루 하루가 곧 연봉 상승과 직결된다. 1군 등록일수는 곧 돈이다. 1군 최저 연봉 6500만원에 미달하는 선수는 등록일수만큼 추가 연봉이 지급된다. 더불어 자신의 커리어가 되고, 더 성장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설령 경기에 나가지 못해 벤치에 앉아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2군 선수를 1군에 부를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곧 키움의 방향성을 부정하는 셈이다.
지속적 전력 약화 속 3년 연속 최하위를 감수하면서 견디고 있는 리빌딩 고통. 대체 무엇을 위한 시간인 것일까.
여러 베테랑들, 내부 FA들을 '리빌딩'과 젊은 팀을 만들어간다는 이유로 포기하면서 좋은 신인들, 많은 유망주를 모은 팀이 바로 키움이다. 어차피 꼴찌가 확정적인 시즌에 확대엔트리를 활용해 유망주 한명이라도 더 1군에 올려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닐까.
확대 엔트리를 다 채우지 않은 이유에 대한 사령탑의 설명은 현재 히어로즈 구단의 모호한 방향성을 인정하는 셈이다.
해외진출이 가능한 거물급 선수로 클만한 대형 유망주 위주로만 선별해서 키운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해외진출 가능선수를 위한 팀, 이런 인식이 확산되면 퓨처스리그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수많은 평범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없다.
4월 12일 이후 단 한번도 10위를 벗어나지 못한 키움은 3년 연속 꼴찌를 확정했다. 키움은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대어' 정현우를 품었고, 올해도 '최대어' 박준현을 손에 넣었다. 내년에도 전체 1순위가 확정적이다. 또 트레이드를 통해 얻은 지명권을 활용해 상위권 선수들을 여럿 영입했다.
지금의 운영으로는 키움은 빨리 주전을 할 수 있는 팀, 해외진출을 위한 교두보 정도 밖에 될 수 없다.
'신인 때부터 많이 뛸 수 있으니 빨리 커서 다른 팀, 혹은 해외로 이적하고 싶은 팀'이 되는 것과 '오래오래 뛰면서 최고의 선수로 사랑받으며 뛰고싶은 팀'이 되는 것 중 어느 쪽이 프로팀의 존재 가치에 부합할까.
구단의 자생력과 특수성을 감안해 이해를 하는 것도 한도가 있다. 여러모로 고개가 갸웃해지는 키움의 행보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