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특급 마무리'로 떠올랐지만, 그답지 않았던 투구 내용. 흔들렸던 마무리는 곧바로 부정적인 기억은 잊었다.
SSG 랜더스 조병현은 지난해 후반기부터 팀의 마무리 투수를 맡고 있다. 올 시즌도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서의 안정감을 보여준다. 66경기에 등판해 5승4패 28세이브 평균자책점 1.68을 기록 중이다. 현재 리그 세이브 5위로 세이브 기회 자체가 적어 세이브왕 경쟁에 뛰어들지는 못했지만, 세부 지표로 따지면 리그 최고 수준의 성적이다.
그런 조병현도 당연히 안좋은 날이 있다. 26일 인천 KT 위즈전이 그런 날이었다. SSG는 5-0으로 앞선 상황에서 9회초 마무리 조병현을 올렸다. 세이브 상황은 아니지만 경기를 깔끔하게 끝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조병현이 첫 타자 강현우에게 볼넷을 주면서 불안하게 출발했다. 1아웃 이후 허경민에게 스트레이트 볼넷, 폭투로 주자 2명을 모두 득점권으로 보낸 후 장진혁에게 1타점 적시타를 허용했다.
끝이 아니었다. 안현민은 삼진 처리했지만, 강백호에게 볼넷, 문상철에게 만루 밀어내기 볼넷까지 내주면서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적시타와 밀어내기 볼넷으로 2실점 한 조병현은 결국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 1개 남은 상황에서 김민으로 교체됐다. 다행히 구원 등판한 김민이 김상수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면서 경기는 5대2로 끝날 수 있었다.
이튿날인 27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이숭용 SSG 감독은 조병현과 잠깐 대화를 나눴다. 이 감독은 내심 걱정이 됐다. 좋은 흐름을 유지해온 조병현이 올 시즌 가장 제구가 엉망이었던 경기 내용으로 인해 신경을 쓸까 싶었다.
이숭용 감독은 "병현이가 던지는 모습을 보는데 느낌이 조금 그랬다. 그래서 (김)민이를 미리 준비 시키자고 했는데, 경헌호 코치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투구수 30개 넘어가면 무조건 바꾸자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이 감독은 "아까 잠깐 방으로 불러서 '어제 잘잤냐?' 물어보니까 '잘잤습니다' 하더라"며 웃었다. 감독과의 단독 면담에도 조병현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어제 잘 잤고,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라고 답했다는 후문.
감독도 헛웃음을 지을 정도로 강한 멘털의 마무리다. 한 경기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 마무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조병현이기도 하다.
이숭용 감독은 "나만 걱정한 것 같더라. 괜히 불렀네 싶었다"고 웃으면서 "물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병현이는 성격도 그렇고 빨리 잊으려고 한다. 실질적으로 이제 프로 2년차인데, 참 어른스럽다. 그래서 믿고 마무리를 맡길 수 있다. 노경은과 더불어 늘 가장 많은 준비를 하는 투수고, 강심장과 덤덤함이 있는 선수"라며 애정이 묻어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잠실=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