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이게 진리라는 걸 온몸으로 입증한 '슈퍼 할아버지'가 이탈리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축구리그에서 '역대 최고령 선수'가 탄생했다. 수 십년전 세리에A에서 100경기 이상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던 람베르토 보랑가가 바로 주인공이다. 올해 82세의 고령임에도 손자뻘 선수들과 함께 실전을 치렀다.
영국 매체 더 선은 7일(이하 한국시각)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전 팀메이트였던 82세의 보랑가가 이탈리아 최고령선수 기록을 경신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올해 82세의 보랑가는 이탈리아 7부리그 USD 트레바나에 합류해 깜짝 복귀전을 치렀다. 보랑가는 폴리뇨와의 경기를 통해 트레바나 데뷔전을 치렀다. 선발 골키퍼로 나와 손자뻘 팀 동료와 호흡을 맞췄고, 마찬가지로 손자뻘 상대 선수들의 강슛을 막아냈다.
결과 자체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보랑가는 5골을 허용한 뒤 26세의 대체 골키퍼 마우리치오 로시와 교체됐다. 하지만 로시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고, 트레바나는 0대10으로 크게 졌다.
하지만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보랑가는 이탈리아 스포츠 역사에 길이남을 기록을 달성했다. 실전에 나선 역대 최고령 선수로 기록됐다. 보랑가는 자신의 경기에 관해 "두 번 실수했지만, 3~4번은 선방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실제로 이날 보랑가는 8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게 몸을 날리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여줬다.
'왕년'의 화려한 실력이 몸에 배인 덕분이다. 알고보니 보랑가는 세리에A 레전드 중 한명이었다. 1961년 프로 생활을 시작한 보랑가는 평생 14개 팀을 거치며 세리에A 100경기 이상 출전했다. 피오렌티나와 파르마 같은 유명 클럽을 거쳤고, 에밀리아-로마냐를 연고로 한 체세나에서만 1973년부터 1977년까지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세리에A 92경기를 소화했다.
이후 세리에B 파르마에서 활약할 때는 이제 막 프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카를로 안첼로티 현 브라질 축구대표팀 감독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당시 보랑가는 36세로 은퇴를 앞둔 팀의 최고참급이었고, 안첼로티는 막 커리어를 쌓아가던 '애송이'였다.
이후 안첼로티는 1979년 세리에A AS로마로 이적해 레전드 커리어를 만들었고, 현역 은퇴 후에는 프로 감독으로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보랑가 역시 독특한 이력을 이어나갔다. 1993년 바스타르도에서 은퇴한 뒤 보랑가는 2009년 아메토에서 축구계에 복귀했고, 2015년까지는 파피아노 팀에서 뛰다가 3년 휴식 후 2019년 마로테세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바스타르도에서 은퇴하기 전에 의학을 공부해 주치의로도 근무하는 특이한 경력을 보여줬다.
이어 마스터스 육상 선수로도 활동하며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12년에 M70 급에서 10.75m로 세계기록을 달성했고, 멀리뛰기에서는 5.47m를 기록해 M65급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달 마데이라에서 열리는 유럽 마스터스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높이뛰기 종목에 출전할 예정이다. 보랑가에게 은퇴는 100세 이후에나 가능할 듯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