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적인 요소가 공존
(연천=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경기도 최북단에 있는 연천군. 2년여 전 이곳까지 연결된 수도권 전철 구간이 개통됐다.
지역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접경지로서의 특성과 함께 때가 덜 묻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역사·문화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연천에 다녀왔다.
◇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연천역
연천은 포천, 파주, 강원 철원군 등과 인접해 있다.
2023년 12월 경원선 전철 동두천∼연천 구간이 개통하면서 관광객 등 방문객이 증가했다.
소요산까지 운행하는 전철 1호선이 연천까지 연장된 것이다.
연천에는 잘 알려진 전곡리 선사 유적지 외에도 고구려 유적지, 접경지의 현실을 보여주는 문화유산 등이 많다.
취재팀은 전철을 이용해 연천으로 향했다.
연천행 전철은 시간당 거의 1회꼴로 다닌다. 청량리역을 기준으로 하면 연천역까지 1시간 20여분이 걸린다.
미리 알아둔 운행 시각에 맞춰 전철을 탔다. 의정부, 양주, 동두천역을 지나면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서울 도심과는 달랐다.
연천역에 도착, 역사를 빠져나오자 붉은 벽돌로 된 관광안내소 건물이 나왔다.
가까이 가 보니 현판 밑에 조그맣게 새긴 설명글이 있다. 현판 서체가 '연천 허목체'라고 쓰였다.
조선시대 이 지역 출신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허목(1595∼1682)의 서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관광안내소 건물은 옛 연천역이다.
관광안내소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높게 솟아오른 원통형의 급수탑이 눈에 띄었다.
과거 경원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다. 바로 앞에는 증기기관차 모습도 보였다.
원통협 급수탑은 지상에서 15m 높이인데, 최대 100t까지 물을 가둘 수 있었다. 주변에는 상자형 급수탑도 있었다.
콘크리트로 된 이들 급수탑은 국가등록 문화유산이다.
급수탑 외벽에는 무엇인가에 패인 듯한 자국이 많았다. 한국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이다.
연천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곳의 과거와 현재의 단면을 본 것 같았다.
◇ 시티투어 버스 탑승…첫 방문지는 숭의전
여행을 할 때 '가성비' 있게 지역을 돌아보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곳도 많다. 이럴 땐 시티투어 버스가 쏠쏠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연천군의 시티투어 코스를 살펴봤다.
요일에 따라 코스가 달랐는데, 가보고 싶은 명소가 포함된 목요일의 역사문화체험 코스가 눈에 들어왔다.
취재팀은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당일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에 올랐다.
빨간 시티투어 버스는 연천역 관광안내소 앞에서 출발했다.
해설을 맡은 신은경 연천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연천군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줬다.
이곳 인구는 4만1천여명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작물로는 율무와 콩, 인삼이 유명하고 기온 차가 커 사과와 포도도 달다고 한다.
버스에 탄 지 20여분이 지나 고려의 종묘라 불리는 숭의전에 도착했다.
조선시대에 고려의 태조와 현종, 문종, 원종 등 4명의 왕과 공신 16명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원래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가 있었던 곳이다.
제례는 계속 이어져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봉행되고 있다.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1970년대 복원됐다.
건물 주변에는 수령 600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 백학역사박물관서 만난 이야기들
다음으로 백학면에 있는 백학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안내문에 백학마을 100년의 근현대사를 담고자 주민들이 스스로 다년간 조성한 곳이라고 쓰여있다. 2018년 개관했다.
과거의 철모와 수통 등 유물과 지역 출신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의 사진이 전시됐다.
벽면에는 3·1 운동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시물 중에는 한국전쟁 때 포탄을 운반한 군마(軍馬) '레클리스'(Reckless) 관련 자료도 있다.
레클리스의 한국 이름은 '아침해'였다. 경주마였는데, 미국 해병대 장교에게 팔렸다고 한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에는 레클리스 동상이 서 있다.
동상 안내판에는 1953년 연천 네바다 전투에서 레클리스가 50여차례 탄약을 날랐다는 내용 등이 적혔다.
◇ 임진강 고랑포구
배 한척과 우거진 수풀, 주상절리
세 번째 방문지는 고랑포구였다.
고랑포구는 과거에 화신백화점 분점이 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으며, 경기 북부 최고의 무역항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시티투어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해설사는 액자에 넣은 1930년대 고랑포구의 사진을 보여줬다.
지금은 인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사진 속에선 강가를 따라 수많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 대부분 파괴됐다고 한다.
철제 출입문이 열리고 일행과 함께 경삿길을 내려갔다.
하천에는 파란 하늘과 건너편 우거진 수풀이 비쳤다.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물 위에는 어업허가를 받았다는 작은 배 한 척만이 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는 도중 성인 팔 길이만큼 되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을 발견하고선 다들 함성을 질렀다.
오른쪽으론 주상절리를 이룬 절벽이 보였다. 고요한 풍경이 이질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 이색 명소가 된 고구려성 '호로고루'
연천에는 당포성, 은대리성 그리고 호로고루(瓠蘆古壘) 등 고구려 3대 성(城)이 있다.
그만큼 지역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이 중 시티투어 버스의 마지막 코스는 호로고루였다.
임진강 옆 삼각형 대지의 아랫부분에 성벽의 윤곽이 조금씩 보였다.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명칭과 관련해선 몇몇 설이 있는데, 과거에 인근 임진강 일대나 지형이 표주박, 조롱박처럼 생겨 '호로하'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독특한 이름도 눈길을 끌지만, 풍경은 더욱 이채롭다.
호로고루홍보관을 지나면 눈앞에 나무 한 그루가 친구를 맞이하듯 서 있다.
주변에는 황화 코스모스가 피어있다.
뒤쪽에 기다랗고 높게 형성된 언덕이 이질감을 안겨준다.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형상이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가까이 갈수록 현무암 또는 편마암으로 쌓아 올린 성벽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성벽의 전체 둘레는 성의 가장자리를 따라 쟀을 때 400여m라고 한다.
성벽 옆에 높게 보이는 솟대, 앞쪽 풀밭에 놓인 제각각 크기의 의자들이 독특한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는 오브제 역할을 하는 것도 같았다.
성벽 뒤쪽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계단이 정상까지 곡선으로 연결돼 있고 그 위에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천국의 계단'으로 불리는 이곳은 이미 사진 명소로 유명하다. 정상에 올라가니 사방이 탁 트였다.
아래를 보면 삼각형 대지의 모습, 물살이 센 임진강, 건너편의 무성한 수풀까지 평온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연천역으로 돌아왔다.
시티투어는 총 4시간 정도 걸렸고, 백학역사박물관 근처 식당에선 점심 식사할 시간도 주어졌다.
서울과 연천을 전철로 왕복한 시간까지 더하면 하루를 참으로 알차게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천에선 접경지의 단면, 천혜의 자연, 역사가 이어진 문화유산 등 현실적이면서도 다채로운 풍경을 접할 수 있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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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