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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개최지 경주는 1천여년 전부터 세계와 교류한 국제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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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2년간 신라 왕조 수도, 1979년 유네스코 선정 '세계 10대 유적지'
'실크로드의 시작이자 끝'…로마 등과 활발히 교류

(경주=연합뉴스) 김용민 김현태 기자 =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는 992년간(BC 57∼AD 935) 신라 왕국의 수도로 존재한 유구한 역사 도시로 1천여년 전 이미 세계와 교류한 국제도시였다.
약 1천년 동안 한 왕조의 으뜸가는 도시 역할을 해 온 곳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신라 왕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한반도 중심 세력이 된 고려 왕조의 수도 개경은 서기 919년부터 1394년까지 475년간 존속하는 데 그쳤다.
고려에 이어 조선 왕조가 1394년 수도로 정한 한양(지금의 서울)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뀐 지금까지 무려 631년간 존속해 오고 있다.
그러나 신라 수도 경주의 역사에 비하면 서울의 역사는 여전히 짧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만 놓고 봐도 경주가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단순히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것만이 경주의 특징은 아니다.
신라의 건국은 당시 경주평야에 살던 6개 부족이 뜻을 모아 '박혁거세'라는 인물을 왕으로 추대하면서 이뤄졌다.
특정 부족이 강압적으로 다른 부족을 합병하지 않고 서로 뜻을 모아 국가라는 공동체를 꾸렸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 민주정 못지않은 체제가 당시 한반도 동쪽 끝에서 실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신라가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하는 밑바탕이 됐다.
바로 실크로드를 통해서다.
실크로드는 대략 기원전 8∼9세기부터 근대까지 중국 심장부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를 거쳐 지중해까지 이어진 무역로를 말한다.
고대 로마는 물론 페르시아 등 서남아시아에서 신라, 특히 수도인 경주를 찾아 교류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경주 고분에서 로마제 유리 제품, 황금 보검 등이 발견된 것은 물론 신라 원성왕(재위 785∼798년) 무덤인 괘릉(掛陵) 묘역 등에 서아시아인 용모의 석상이 여럿 서 있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를 토대로 실크로드 동쪽 끝인 경주가 세계 문물 교류의 시작점이자 끝이었다는 주장이 최근 들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서인 삼국유사에 경주가 전성기에 17만8천여 가구가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봐도 당시에 이미 인구 100만명이 넘는 세계적 도시였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8세기 무렵 인구가 100만명에 이르는 도시는 경주를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콘스탄티노플, 장안, 바그다드 정도에 불과했다.
유네스코가 이미 지난 1979년에 경주를 '세계 10대 유적지'로 선정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처럼 경주가 세계적인 도시로 기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타고난 지형적인 특성도 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토함산, 남산 등 산들이 에워싼 분지에 자리 잡아 외세 침입을 막기에 용이했다.
동시에 바다가 멀지 않아 외국과 교류하는 데 유리한 조건도 갖췄다.
이런 천혜의 지형적 요건을 갖추다 보니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걸작이 즐비하다.
서울 경복궁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 유산인 불국사를 비롯해 가장 한국적인 석탑으로 평가받는 석가탑, 화려한 조형미를 뽐내는 다보탑이 있다.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 본존불은 세계에서 예술적 조형미가 가장 뛰어난 화강암 불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며 감포 앞바다에 있는 문무대왕릉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중 왕릉이다.
시대정신을 담은 무형유산도 많은데 그중 하나가 신라 진흥왕 때 처음 기록이 보이는 팔관회(八關會)다.
삼국사기는 '신라 진흥왕 33년(서기 572년) 10월 20일에 전사한 병사들을 위해 수도 바깥의 사찰에서 팔관연회(八觀筵會)를 개최해 7일 만에 마쳤다'라고 서술한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어우러진 국가적 축제, 왕과 대신·외국 사신·백성 등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발전했다.
팔관회는 불교의 종교적 행사였지만 APEC의 가치도 담고 있다.
조선 문종 2년(1452년) 김종서 등이 편찬한 고려시대 역사서 '고려사절요'는 신라에서 시작된 팔관회가 왕과 백성이 함께 부처 앞에서 평화를 기원하고 초대된 외국 사신과 상인들은 물건 등을 거래하며 문화를 교환하는 장으로 발전했다고 묘사한다.
팔관회가 국가의 번영, 세계의 조화를 기원하는 축제이자 차별 없는 만남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APEC과 팔관회는 시대는 달라도 '공동체의 연대'와 '정치적·문화적 상징성'이라는 가치의 흐름은 궤를 같이한다.
APEC 정상회의가 경제·무역 등에 대한 의제뿐 아니라 회원국 간 문화교류와 상징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경주가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14일 "신라 수도였던 경주는 이미 1천여년 전부터 세계인들이 교류한 국제도시였다"며 "APEC 국가 정상들이 경주에 모이는 것은 그 역사가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yongmin@yna.co.kr
mtkht@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