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극재 사업 후 최대 규모 수주…최대 10년까지 연장시 1조7천억원 규모
미중 '핵심광물 전쟁' 고조 속 '탈중국 음극재 입도선매' 본격화
(세종=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포스코그룹의 이차전지 소재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이 글로벌 완성차사에 4년간 6천700억원어치의 음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는 이 회사 역대 최대 규모의 장기 주문이다.
이번 계약은 미중 신냉전의 전선이 배터리와 핵심 광물로까지 확대돼 미국 등 서방 기업의 탈중국 수요가 급속히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이에 글로벌 고객사들이 포스코퓨처엠의 탈중국 음극재를 대상으로 한 '입도선매'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스코퓨처엠은 14일 글로벌 완성차사와 6천710억원 규모의 천연 흑연 음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상대방은 경영상 비밀 유지 차원에서 상호 합의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계약 기간은 2027년 10월부터 2031년 9월까지 4년간이지만 상호 협의를 통해 연장할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렸다.
이번 계약 '유보 기간'은 2037년으로 명시됐다. 따라서 계약 기간은 기본 4년에 연장 6년을 더해 최장 10년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계약 금액은 10년간 총 1조7천억원 규모로 증가하게 된다.
4년 기본 계약 물량 기준으로도 포스코퓨처엠이 2011년 이차전지 음극재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최대 규모 수주다.
포스코퓨처엠은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에 음극재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일본 배터리사와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미중 신냉전 격화 속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및 배터리 소재 공급 다변화 정책이 더욱 중요해지는 가운데 이번 계약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세계적으로 이차전지 음극재 시장은 중국 기업들이 장악해왔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출하량 기준 1∼10위가 모두 중국 기업들이었다. 합산 시장 점유율은 80%를 넘었다. 비중국 기업으로는 포스코퓨처엠이 11위(1.3%)를 기록해 순위가 가장 높아 세계적으로 사실상 유일한 탈중국 대안 역할을 해왔다.
이에 미국 정부는 올해 들어 자국 기업들이 값싼 중국 음극재 의존을 줄이기 위해 고율 관세 부과 카드를 꺼냈다.
반대로 중국은 지난 9일 이차전지 완제품과 음극재 등 이차전지 소재를 새롭게 수출 통제 대상으로 올리면서 유사시 대미 수출 차단에 나설 태세를 갖췄다.
특히 테슬라, 제너럴모터스, 포드 등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와 배터리 관련사들은 중국산 이차전지 의존도를 빠르게 낮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국 내 제조 시설로 음극재용 흑연을 가져다 써야 하는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와 파나소닉 등 일본 배터리사도 마찬가지다.
포스코그룹은 원료부터 중간 가공, 완성품 단계에 걸쳐 중국에서 완전히 독립된 음극재 공급망 내재화를 추진 중이다.
현재 포스코퓨처엠은 중국 공급사에서 받아 가공한 구형흑연(입자가 둥근 흑연)을 조달해 세종 공장에서 재가공해 천연 흑연 기반 음극재를 제조한다. 따라서 아직은 완벽히 중국 공급망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신 포스코퓨처엠은 탈중국 공급망 구축을 위해 전북 새만금에 국가산업단지에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구형흑연 가공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후 포스코그룹 차원에서 아프리카에서 확보해 도입하는 천연 흑연을 이곳에서 구형흑연으로 가공한 뒤 세종 공장으로 넘겨 천연 흑연 음극재의 완벽한 탈중국 공급망을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새롭게 장기 계약이 체결된 물량은 아프리카 도입 흑연을 기반으로 한 음극재가 대상이다. 고객사가 제품 양산 2년 전, 공장도 서지 않은 상황에서 '입도선매'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 포스코퓨처엠은 값싼 중국산 음극재와 경쟁에서 밀려 고전해왔다는 점에서 탈중국 수요의 폭발적 증가가 수요 증가 및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 업체들은 천연흑연 기반 음극재 완성품을 1㎏당 2달러대에 팔고 있는데 이는 포스코퓨처엠의 공급가보다 40∼50% 낮은 수준으로 전해졌다.
이런 탓에 포스코퓨처엠은 중국산과 가격 경쟁에서 고전해왔다. 심지어 국내 배터리 3사도 중국산 음극재를 국내외 사업장에서 최대한 활용하고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소수 물량만 포스코퓨처엠의 음극재를 사용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포스코퓨처엠의 천연 흑연 음극재를 생산하는 세종 공장 가동률은 2022년 67%에서 올해 상반기 30%대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만 포스코퓨처엠은 음극재 사업서 수백억원의 손실을 봤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중국 공급망에 대한 규제가 점점 심화하고 있어 다른 글로벌 완성차사들도 음극재 조달을 중국 외 공급망으로 다변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며 "포스코퓨처엠처럼 공급망이 갖춰진 국내 업체와의 음극재 수주 계약이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cha@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