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는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 현장이다. 가뭄·홍수·사막화·기후 난민 증가 같은 복합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그중에서도 사헬(Sahel), 차드 호수, 아프리카 뿔(Horn of Africa) 지역 등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남수단 등 거버넌스가 취약하거나 빈곤한 국가, 내전과 분쟁을 겪고 있는 국가는 기후변화의 충격에 더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가뭄과 홍수 발생 빈도는 지난 50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부룬디, 탄자니아 등에서는 극심한 가뭄과 기록적인 폭우로 수백만 명이 식량 위기에 직면했고, 이재민이 발생했다. 아프리카는 개발도상국으로서 경제적·기술적 제약으로 인해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 역량의 부족은 가뭄, 홍수, 사막화 등 복합적 위기를 심화시킨다. 이는 물과 식량 부족, 기후난민 증가, 사회적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30년 전엔 가뭄·사막화…이제는 도시 '물난리'가 더 큰 위협
필자는 1990년대 초, 대학에서 열린 모의 유엔총회에 아프리카 대표로 참석해 아프리카 환경문제를 발표했다. 발표 주제는 선진국의 아프리카 쓰레기 투기 문제, 그리고 가뭄과 사막화의 심각성이었다. 그 시기만 해도 '홍수'라는 단어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최근 아프리카의 도시 홍수는 기후변화, 급속한 도시화, 취약한 기반 시설이 겹치며 발생 확률과 피해 규모가 동시에 커지는 복합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집중호우 빈도가 높아지면서 도로포장 확대로 불투수 면이 증가하고 지표면 유출(surface runoff)이 많아진다. 배수 체계 미비, 강변·저지대 등 홍수 취약 지대에 인구가 밀집한 구조가 위험을 더 키운다. 그 결과 인명 피해, 공중보건 악화, 경제 손실, 사회적 불평등 심화 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25년 8월 현지 조사를 위해 우간다 수도 캄팔라를 방문했다. 우간다의 한 지인은 휴대전화를 통해 시내에 발생한 홍수 영상을 보여줬다.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이 소나기가 내렸을 뿐이라 홍수가 났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그녀는 도심 저지대가 물에 잠긴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도시 홍수 피해 계속 늘고 있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이제 일상적인 현상에 가깝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KwaZulu-Natal)에서는 2022년 4월 기록적 폭우로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해 약 450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이 수만 명에 달했다. 주택 수만 채가 파손됐는데 특히 슬럼가와 무허가 주거지가 큰 피해를 보았다.
2024년 1월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는 해안가 저지대의 음심바지(Msimbazi) 강 유역이 범람해 큰 피해를 남겼다. 같은 해 3월부터 5월 사이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폭우와 홍수로 약 250명 이상이 사망하고 약 5천500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농경지와 가축, 주택, 인프라가 큰 피해를 보았다.
아프리카 도시 홍수는 우리나라 태풍 피해에 비해 전혀 적지 않다. 인명 피해와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하고 주택·도로·교량·상하수도 등 취약한 인프라가 파괴된다. 오염수 유입과 위생 악화로 콜레라 등 수인성 질병이 확산하고 보건 시스템은 과부하 상태에 빠진다.
민주콩고 수도 킨샤사에서는 현재 도로 정비가 이뤄졌지만, 과거에는 시내와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도로가 비포장이었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쉽게 침수돼 차량 통행이 불가능했다. 그 결과 공항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도로가 잠기면 차량을 이용하지 못하고 재래식 화장실 오물이 뒤섞인 도로 위를 여행 가방을 머리에 인 채 걸어가야 했다.
도시 홍수는 교통마비와 상업·공공 서비스 중단을 초래한다. 특히 슬럼가 지역에 불균등하게 피해가 집중된다.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배수로 막는 쓰레기, 홍수 피해 키우는 '숨은 주범'
아프리카의 쓰레기 처리 문제는 단순한 환경오염을 넘어 기후변화 피해를 더욱 증폭시킨다. 관리되지 않은 폐기물은 하천과 배수로를 막아 집중호우 시 도시 홍수를 악화시킨다. 매립지와 방치된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온실가스 배출을 더욱 늘린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으로 흘러 들어가 생태계를 위협하고 지역 주민들의 건강 문제를 악화시킨다. 결국 쓰레기 처리 부재는 기후변화 취약성을 높이고 재난 피해를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나이지리아 라고스, 케냐 나이로비 등 대도시는 재활용 인프라가 거의 없어 플라스틱이 하천과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쓰레기로 막힌 하수관은 폭우 때마다 도시를 침수시키고 이는 곧 전염병 확산으로 이어진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아프리카에서 매년 400만t 이상의 플라스틱이 잘못 처리돼 환경에 배출된다고 경고했다. 문제의 근본에는 열악한 폐기물 관리 인프라가 있다. 다수의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은 폐기물 수거 시스템조차 없다. 이에 따라 전체 쓰레기의 70% 이상이 무단으로 버려지거나 비위생적 매립지에 버려진다.
필자는 아프리카를 다니며 쓰레기 처리 차량을 보면 사진을 찍는 버릇이 생겼다. 쓰레기를 처리한다는 사실이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주요 거리, 하천, 호수에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최근 주요 도시에서 플라스틱병 등 재수거가 이뤄지고 있지만 대부분 개인의 생계 수단에 불과해 수거와 재활용 수준은 여전히 미비하다.
아프리카 대륙은 빠른 도시화와 인구 증가, 그리고 중산층의 확대와 함께 생활폐기물 발생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과 포장재 사용이 증가하면서 플라스틱 폐기물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밖에 전자 폐기물과 산업 폐기물까지 더해져 관리 부담이 심각해지고 있다. 가나 아그보글로시에(Agbogbloshie) 지역은 세계 최대의 전자 폐기물 집적지 중 하나다. 이곳에서 배출되는 독성 물질은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위협하고 있다.
쓰레기 관리 체계는 도시마다 큰 격차를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수거율이 낮고 정식 폐기 시설이 부족하다. 많은 도시에서는 쓰레기가 무단으로 버려지거나 노천에 방치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불법 소각으로 처리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와 미세먼지는 주민들의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킨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강, 호수, 해안선을 오염시켜 수생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쓰레기가 배수로를 막아 홍수를 악화시키는 경우도 빈번하다.
결국 아프리카의 쓰레기 문제는 단순한 수거·처리를 넘어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자원 회수와 재사용, 쓰레기 감량을 중심으로 한 장기 전략이 없다면 쓰레기 문제는 환경·건강·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위협으로 남게 될 것이다.
동아프리카 케냐를 처음 방문했을 때, 청명한 하늘과 쾌적한 기후, 손에 잡힐 듯한 푸른 구름은 날씨가 사람에게 주는 기쁨을 실감하게 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과는 달리 끝없이 이어진 나무에 걸려 있는 이른바 '플라스틱 꽃'(plastic flowers)과 거리 곳곳의 쓰레기는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절망 속 희망…동아프리카, 세계서 가장 강력한 '비닐봉지·일회용 플라스틱' 규제
쓰레기 문제와 환경 보호를 위한 긍정적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동아프리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비닐봉지와 일회용 플라스틱을 규제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도시 위생, 홍수, 관광 자원,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부른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가장 먼저 강력한 조처를 한 국가는 르완다다. 르완다는 2008년부터 비닐봉지의 제조·수입·판매·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엄격한 단속과 시민 의식 개선을 병행해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르완다 입국 시 여행객이 비닐봉지를 소지하면 압수된다. 이 정책 덕분에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로 불린다.
필자는 2008년 우간다에서 르완다로 들어가던 길에 국경에서 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 백인 관광객이 해당 규정을 알지 못한 채 속옷을 세탁해 비닐봉지에 담아왔는데 국경 관리들은 이를 압수하고 종이봉투에 옮겨 담게 했다. 그가 규정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예외는 허용되지 않았다.
케냐는 2017년 8월부터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2020년에는 국립공원과 해변 등 보호구역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추가로 금지했다. 탄자니아는 2019년 6월부터 비닐봉지의 제조·수입·판매·사용을 모두 금지하고 필수 산업용 포장만 예외로 인정했다. 부룬디는 2018년 법을 제정한 뒤 2020년 2월부터 모든 플라스틱 봉투와 포장을 금지했고, 에티오피아는 2025년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제조업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책임을 부과했다.
동아프리카의 사례는 개발도상국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보다 앞서 환경 규제를 과감히 시행한 드문 경우다. 환경 문제 해결에서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합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기후위기 대응, 개인 경험에 접목해야 효과적… 거대 담론보다 '현장 맞춤형 지원' 절실
2025년 9월 17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에서 열린 제60차 '경계를 넘나드는 세미나'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강문수 박사는 '개발도상국 도시민의 기후변화 인식 연구'를 주제로 발표했다. 강 박사는 "기후 정책은 단순히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계획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선호와 실제적인 수요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마다 다른 기후변화 양상에 맞추어 차별화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연재해가 농업·임업·수산업뿐 아니라 도시 지역의 보건·위생에도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인식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개인이 직접 겪는 경험에서도 비롯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민들은 가뭄·홍수·폭염 같은 재난에는 민감하지만 해수면 상승·산사태·산불·태풍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인식을 보였다. 이는 정책이 개인의 실제 경험을 반영하지 못하면 현장의 수요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지역사회와 개인의 기후변화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홍보·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인들은 크고 작은 재난의 원인을 기후변화와 연결해 인식하지만, 근본 원인은 인프라 투자 부족에 있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성패는 사전 예방, 운영 관리, 그리고 사회적 형평성을 얼마나 정책의 핵심에 두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자 기후 기술·재생에너지·스마트 농업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나라로서 아프리카의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할 수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2024∼2026년 동안 케냐·소말리아·남수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아프리카 기후 회복력 강화 사업'과 KOICA가 유엔아동기금(UNICEF)과 협력해 짐바브웨와 코모로에서 추진하고 있는 '라스트 마일(Last Mile) 기후 행동' 프로젝트는 의미 있는 국제 협력 사례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현지 국가와 토착적 정보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거대한 프로젝트도 필요하지만, 각 국가·지역·도시에 적합한 도시 홍수 예방과 쓰레기 처리 방식을 지원하는 것이 더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광수 교수
현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남아프리카공화국 노스웨스트대 박사, 저서 '서아프리카 역사 이해' 등 45권 집필, 한국연구재단·한국국제협력단(KOICA)·문체부·외교부 등 각종 기관의 강의·연구자로 활동.
afrikaans@hufs.ac.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