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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리그 6위+아챔 돌풍' 잘나가는 젊은 사령탑 왜 메가폰을 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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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여러분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저도 너무 답답하고, 감독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2년 연속 파이널A 그룹 진출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깜짝 돌풍을 이끌며 세간의 호평을 받는 지도자가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일까.

정경호 강원FC 감독은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파이널A 첫 경기(34라운드)에서 2대4로 역전패한 뒤 일부 강원 서포터의 '감독 콜'에 원정 서포터석 앞으로 향했다. 현장에 있던 한 축구계 관계자는 "지금 강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평소 할 말을 하는 시원시원한 성격대로 구단 관계자, 스태프 뒤에 숨거나 피하지 않았다. 한 스태프로부터 메가폰을 건네받은 정 감독은 담담한 목소리로 팬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더 발전하기 위해 더 많은 응원을 해달라"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먼 원정길을 달려온 일부팬이 감독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전반에 잘하다 후반에 휘청이는 최근 팀의 문제점에 대한 안타까움, 허탈함 그리고 궁금증이다. 강원은 지난 5일 안양과의 K리그1 32라운드에서 1-0으로 앞서다 후반 41분 김보경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대1로 비겼다. 대구와의 33라운드에선 전반 15분만에 이상헌 서민우의 연속골로 2-0 리드했다. 하지만 후반 막바지 세징야, 에드가에게 연속골을 헌납하며 2대2로 비겼다. 안양, 대구전 포함 리그 4경기 연속 무승에 하마터면 '상스'(상위 스플릿) 진출권을 놓칠 뻔했다. 광주를 승점 2점차로 간신히 따돌리고 6위를 지켰다.

후반 추가시간 5분 김건희의 극장골로 4대3 깜짝 승리한 지난 22일 비셀 고베와의 ACLE 리그 스테이지 3차전은 강원팬의 불안감을 키운 경기였다. 강원은 전반 43분까지 이상헌 모재현 송준석의 골로 3-0 리드했지만, 후반 미야시로 다이세이(2골), 장 파트리크에게 3골을 내주며 따라잡혔다. 서울전에서 전반 11분 김건희, 후반 7분 모재현의 골로 2-0 리드하던 강원은 린가드(2골), 류재문 천성훈에게 4골을 내주며 대역전패를 당했다. 강원의 실점은 최근 5경기에서 0골, 1골, 2골, 3골, 4골로 점점 늘었고, 5경기에서 10골을 모두 후반에 허용했다. 서울전 승리시 서울을 끌어내리고 5위를 탈환할 수 있었던 강원의 팬들로선 '역대급 역전패'가 허탈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이날 패배로 승점 44에 머문 강원은 5위 서울(승점 48)과의 승점차가 4로 벌어졌다. 일부팬은 정 감독의 교체 타이밍과 후반 교체투입한 이기혁의 재교체에 대한 결정에 의구심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 답답한 건 팀의 수장인 감독일 터. ACL과 리그 경기를 분석하느라 최근 거의 잠을 못 잔다고 토로한 정 감독은 "피해갈 생각은 없다. 팬들은 더 좋은 성적과 경기력을 기대할 수 있다. 후반전 플랜, 교체술에 대해 더 심도있게 고민하고 선수들과 소통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사실 우리가 1대0 승리가 많은 팀이다. 팀이 힘들 때도 한 골 넣고 버텨서 여기까지 왔다. 선수들도 깊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 실점하지 않으려는 끈끈함과 헌신이 전체적으로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은 전반에 베스트 멤버를 총투입한 강원을 상대로 밀리는 양상이었지만, 후반에 교체투입한 선수들이 4골을 합작했다. 강원 벤치에는 소위 큰 경기에서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수준급 '게임체인저'가 없었다. 결국은 스쿼드의 질 차이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외인 농사'에 실패한 강원은 올 시즌을 국내 선수 위주로 힘겹게 끌고오고 있다. 강원 사정을 잘 아는 축구인은 "선발로 뛰는 멤버와 플랜A 전술은 흠잡을 곳 없이 탄탄하다. 하지만 강도높은 전방 압박 전술로 인해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드러낸다. 후반에 투입되는 선수의 전반적인 수준과 상황 판단도 부족하다. 이럴 때 다른 팀은 외인을 투입해 변화를 주지만, 강원은 팀 사정상 외인을 활용할 수 없다. 결국 후반에 상대에게 쉽게 흐름을 넘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김병지 강원 대표와 선수 보강에 대해 소통해야 할 것 같다. 게인체인저 역할을 할 선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강등팀도 아닌 상스에 진출하고 ACLE 리그 스테이지에서 2승1패의 호성적으로 동부지구 3위를 달리는 지도자가 메가폰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축구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 강등권 팀도 하지 않는 '감독 호출'이 6위팀에서 나온 게 의아하고 이례적이란 의견,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팬들이 오랜기간 참았던 것이 이날 역전패로 폭발했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정 감독은 그저 "내가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을 여러번 반복한 뒤 어두운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강원은 11월1일 전북과의 35라운드 홈 경기에서 반전을 노린다. 상암=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