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9월에 이어 다시 기준금리를 낮췄지만, 다음 달 한국은행은 동반 인하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금리 격차가 1.50%포인트(p)로 줄어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걱정은 덜었지만, 무엇보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다.
11월 27일 통화정책방향 회의 전까지 서울 집값 오름세가 뚜렷하게 진정되지 않을 경우, 금리 인하 시점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시장과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 연준, 고용 둔화 등에 또 0.25%p↓…12월 인하는 불투명
연준은 28∼29일(현지 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3.75∼4.00%로 0.25%p 내렸다.
미국의 정책금리는 지난해 9월(-0.50%p), 11월(-0.25%p), 12월(-0.25%p) 잇달아 낮아진 뒤 계속 묶여 있다가 올해 9월과 10월 연속 인하가 단행됐다.
연준은 의결문에서 인하의 배경으로 고용 증가세 둔화, 실업률 상승 등을 거론했다.
양적긴축(QT·대차대조표 축소)을 12월 1일 종료한다고 예고한 것도 통화 완화적 조치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2월 추가 인하는 기정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하자 시장에서는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인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한미 금리차 1.75%p→1.50%p…한은 금리인하 여력은 커져
미국의 잇단 인하로 내외 금리차, 환율 등 측면에서는 일단 한은의 금리 인하 여력이 커졌다.
지난 5월 이후 역대 최대 폭(2.00%p)까지 벌어졌던 미국과 기준금리와 격차가 1.50%p로 축소되면서, 자본 유출이나 원/달러 환율 상승 압박이 줄었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을 크게 밑돌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더구나 지난 29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도 향후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이날 새벽 2시 환율은 전날 서울 환시 종가보다 16.70원 낮은 1,421.00원까지 급락했다. 지난 20일(1,420.80원) 이후 7거래일 만에 1,430원대에서 1,420원대로 내려앉았다.
환율이 떨어질수록 한은 입장에선 그만큼 금리 인하를 주저할 요인이 사라지는 셈이다.
◇ 4년만에 가장 높은 집값전망지수…올해 1%대 성장 가능성도 연내 동결에 무게
관세 협상 불확실성 해소와 미국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환율이 떨어져도, 서울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11월에도 한은은 쉽게 기준금리를 낮추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은 입장에서는 유동성을 더 늘려 부동산 시장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분명히 밝혔고, 실제로 2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이 총재 등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3연속 동결을 택했다.
이 총재는 동결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우리나라 소득 수준과 사회적 안정을 고려할 때 너무 높은 수준"이라며 "부동산 가격 상승이 우리 경제 성장률을 갉아먹고 불평등을 심화한다"며 집값 안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금통위도 의결문에서 "(6·27, 10·15 등) 부동산 대책의 수도권 주택시장·가계부채 영향, 환율 변동성 등 금융안정 상황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주요 동결 배경으로 부동산을 꼽았다.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KB부동산이 25일 발표한 10월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보다 1.46% 높아졌다.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한은의 소비자동향조사에서도 10월 주택가격전망지수(122)는 9월보다 10p 올라 4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만큼 1년 뒤 집값 상승을 예상한 응답자가 늘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지난 28일 발표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이 한은의 당초 예상보다 0.1%p 높은 1.2%로 확인되고 올해 연간 1%대 성장 가능성이 커지면서, 경기 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 명분도 줄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동산·가계대출·환율·경기 등에 큰 변화가 없다면, 11월 금리 인하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한은이 연내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내년 2월이나 1분기 중 한 차례 더 낮추고 인하 사이클(주기)을 종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다음 달 한은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상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잠재성장률을 회복한다는 의미인 만큼 11월 회의에서 인하 사이클 종료를 시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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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