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필자는 지난여름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 캠프를 방문해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로힝야 난민 캠프에는 110여만명의 난민이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 미국의 국제개발처(USAID) 폐지와 함께 시작된 개발협력 재원 위기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난민에 대한 지원이 대대적으로 삭감된 현실을 그곳에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난민에게 배급되는 식비가 삭감되고, 학교 역할을 하던 러닝 센터가 문을 닫고 난민들을 위해 일하는 인력이 대폭 줄어들었다. 남의 나라에서 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실감하게 한 현지 조사였다.
우리의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난민 대부분이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민을 포함한 강제이주민의 73%는 중저 소득 국가인 개발도상국에, 난민의 67%는 분쟁 발생국 근처에 각각 살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는 오랫동안 분쟁을 겪었고, 분쟁 발생국 근처에는 분쟁을 피해 이주한 수많은 난민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수단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140만명의 강제이주민이 인근 국가로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 캠프는 다양한 개발협력 사업들이 동시에 진행되는 특수한 현장이며 정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한꺼번에 활동하는 곳이다. 학자로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문하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난민 수용국의 절차를 따라서 캠프 방문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정치적 문제로 허가가 거절되곤 하기 때문이다. 2019년 초에 방문했던 탄자니아 나루구슈(Nyarugusu) 난민 캠프 역시 우여곡절 끝에 방문 허가를 받고 어렵사리 방문할 수 있었던 현장 중 하나다. 당시 탄자니아 서쪽 끝에 있는 나루구슈 난민 캠프에는 난민과 현지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개발협력사업 '공동시장 사업'이 진행됐다.
공동시장 사업은 난민 캠프와 지역 공동체 중간 지역에 난민과 주민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을 짓는 사업이었다. 단순한 아이디어였지만, 공동시장에 대한 주민과 난민의 호응은 엄청났다. 난민 캠프 내에도 시장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난민이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난민들은 난민 캠프 내에서 키운 작물을 팔거나 난민 캠프에서 받은 지원품을 공동시장에 팔았다. 그리고 주민들이 가져온 물건을 샀다. 주민들 역시 난민 캠프의 지원품을 사기도 했고, 난민이 필요한 다양한 물건들을 가져와 팔았다. 이 사업은 다양한 먹거리와 생필품이 필요했던 난민과 비즈니스 기회를 찾던 주민들의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켜 줬다. 비즈니스 확대로 난민과 주민 모두의 소득이 확대됐고 난민의 자립성 확보가 가능해졌다. 공동시장이 열리는 날은 지역 축젯날처럼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나루구슈 공동시장은 인근에서 가장 큰 시장이 됐다.
공동시장을 통한 또 하나의 성과는 난민에 대한 인식 변화다. 난민 캠프는 국경 근처에 외진 곳에 지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난민 캠프 주위에 사는 주민은 오히려 난민보다 생계 수준이 낮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난민들은 난민 캠프에서는 기본적인 의료 시설과 교육 시설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주변 주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나루구슈 난민 캠프의 난민들도 현지인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는데, 특히 최근에 들어온 난민일수록 그러한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았다.
당시 나루구슈 캠프에는 캠프생활을 시작한 지 30여 년이 된 콩고 난민과 3∼5년 정도 된 부룬디 난민이 같이 거주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대체로 콩고 난민은 성실하고 착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부룬디 난민은 거짓말을 잘하고 범죄를 자주 저지른다고 생각했다. 콩고 난민의 경우 이미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해, 주민들은 그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캠프에 도착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부룬디 난민에 대한 인식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공동시장에서 만나거나 같이 일을 하는 부룬디 난민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주민들의 대답은 놀라웠다. 그들은 대체로 부룬디 난민은 착하지 않지만, 자신과 같이 일하는 부룬디 난민의 경우 친구이며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동시장에서 주민과 난민은 서로 물건을 사고팔기도 하지만 같이 협력해 일하기도 한다. 한 장소에서 같이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나가고 서로의 상황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공동시장이 난민과 주민이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소중한 장소가 된 것이다.
난민을 수용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난민을 지원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이 없을 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여론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예상과 달리 실제 난민 캠프 인근 주민은 오히려 난민 수용에 호의적이었다. 탄자니아 서부 지역에는 당시 총 30여만명의 난민이 있었고 나루구슈 캠프에만 15만여명의 난민이 머물렀다. 난민을 수용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대부분 주민은 일 년 소득이 채 50만원이 되지 않았는데도 망설임 없이 난민을 도와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고향을 잃어서", "가여워서"라고 했다. 당시 한국은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도착해서 큰 논란이 있었던 터라 그런 답변을 들은 필자는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인간은 대체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다.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까지 선뜻 도움의 손을 내밀기는 어렵다. 다른 국가에서 온 외국인에게는 더욱더 그러하다. 하지만 긴 문명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낯선 이들을 환대하고 서로 배우며 발전해왔다. 주민과 난민이 함께 만든 나루구슈의 공동시장이 지역 공동체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우분투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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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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