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힘들었던 지난 시즌, 저도 선수들도 잊지 않았다. 그 절실함을 안고 뛰고 있다."
진에어 2025~2026시즌 V리그 여자부는 시즌 초반 춘추전국시대다.
7개 팀이 2~4경기씩 소화중인 지금 모두 최소 1승 이상을 올리며 물고 물리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유일하게 2승 무패고, 나머지 팀들은 또 1패 이상씩 적립하고 있다. 5세트 혈투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GS칼텍스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다. 올해도 최하위권 전력이란 평가가 무색하게 시즌초부터 돌풍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우승후보 1순위라던 IBK기업은행과 디펜딩챔피언 흥국생명을 잡았고, 준우승팀 정관장과도 풀세트 접전 끝에 아쉬운 패배블 당했다.
특히 29일 장충 흥국생명전은 세트스코어 1-2로 뒤지다가 4~5세트를 내리 따낸 역전승이었다. 경기 후 만난 이영택 GS칼텍스 감독은 "참 쉽지 않다"며 1승의 소중함을 되새겼다.
1세트만 해도 무난한 GS칼텍스의 승리가 예상됐다. '쿠바 괴물' 지젤 실바는 1세트에만 서브에이스 5개 포함 8연속 서브를 몰아치며 상대 수비진의 혼을 빼놓았다. 공수에서의 움직임도 톱니바퀴마냥 착착 맞아떨어졌다.
2세트 막판부터 팀 전체가 갑작스런 난조에 빠졌다. 2세트에만 범실 10개가 쏟아졌고, 23-21로 앞서던 경기는 듀스를 허용한 뒤 결국 내줬다. 3세트 들어 공격이 실바에게 집중되며 상대의 블로킹 집중마크가 힘을 발휘했고, 또 역전패였다,
4세트부터 레이나와 유서연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두 선수는 4세트 6득점, 5세트 5득점을 합작하며 실바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실바의 공격에 한층 더 힘이 실렸고, 결국 GS칼텍스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 승리의 1등 공신은 물론 실바다. 실바는 이날 GS칼텍스 공격의 43.5%를 책임지며 40득점을 올렸다.
지난해 전설적인 55득점 경기(2월 5일 페퍼저축은행전)를 비롯해 40득점 이상 경기만 9경기였던 실바다. 하지만 이처럼 압도적인 기량의 외인을 보유하고도 GS칼텍스는 2년 연속 봄배구에 실패했다. 실바를 도와줄 선수가 없었고, 결국 실바가 집중마크에 무너지면서 패하는 경기가 많았다.
올해는 다를 수 있을까. 이날 레이나(22득점)와 유서연(12득점)은 공격 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빠른 발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팀 승리를 뒷받침했다.
경기 후 만난 이영택 GS칼텍스 감독은 "1세트는 완벽했는데,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기록된 범실도 많았지만(24개, 흥국 18개), 기록되지 않는 범실도 많아 반격을 당했다"고 돌아봤다.
"반대쪽에서 실바의 부담을 덜어줘야한다"는 말은 이영택 감독이 부임 직후부터 매경기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말이다. 모처럼 그 실마리가 보인 날이었다. 그는 "세터의 분배가 중요하다. (유)서연이가 레베카와 매치업을 하면서 반대로 레이나의 공격이 수월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향후 로테이션은 계속 고민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 정관장전에서 목적타 서브에 리시브가 무너지면서 주저앉았던 레이나에 대해 "훈련량을 늘리면서 감을 잡아가는 것 같다. 오늘 잘 버텨줬다. 특히 공격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영택 감독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달래도 보고 화도 내고 소리도 친다. 선수 교체도 하고 고민이 많아진다"면서도 "지난 시즌에 너무 힘든 시간을 겪었다. 나도, 선수들도 그 마음을 잊지 않았다. 매경기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레이나 역시 사령탑의 속내에 100% 공감했다. 올시즌 포부와 각오를 묻자 "(흥국생명 시절과 달리)아웃사이드히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실바를 돕는 확실한 득점원이 되는 게 목표다. 중요한 순간에 득점을 내서 팀을 돕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리시브를 잘해야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지난 시즌 일본 배구 1부리그인 SV리그에서 뛰고도 한국 복귀를 택했다. 레이나는 "리그 인기가 (일본보다)많고, 다시 보고싶다고 말하는 팬들도 많아서"라며 웃었다.
"GS칼텍스 숙소(청평)는 공기가 정말 좋다. 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 마음에 든다. 이영택 감독님은 항상 '서브가 약하다'라고 말씀하신다. 서브는 내 배구 인생 내내 계속 약점이다. 그래도 (이영택 감독이)아본단자 감독님만큼 무섭진 않고, 다정하게 잘해주셔서 감사하다."
장충=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