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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만 이런 식인가" 또 터진 오심 논란, V리그 열기에 '찬물' 될라…3년전과는 달라? 왜 블랑 감독은 분노했을까 [천안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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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실수라는 말로 끝날 일인가? 전 세계 배구리그 중 왜 한국만 이렇게 경기를 운영하는가?"

어설픈 판정 하나가 모처럼 달아오른 배구판에 '찬물'을 끼얹을 상황이다. 작전 지시는 열정적이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코트에 서던 사령탑도 좀처럼 흥분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 개막 3연승을 달리던 현대캐피탈은 2~3세트를 내리 내주며 패배 위기에 빠졌다.

4세트 현대캐피탈이 5-4로 앞선 상황, OK저축은행의 스파이크가 라인 밖으로 밀려나갔다. 벤치는 비디오판독을 신청했다.

축구(K리그)와 농구(KBL)는 주심의 권한이 크다. 비디오판독을 볼 것인가, 그대로 진행할 것인가의 권한도 주심에게 있다. 판정에 자신이 있으면 판독을 보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있다.

설령 판독을 한다해도, 리플레이를 보는 사람도, 이를 통해 최종 판정을 내리는 사람도 주심이다. 해당 경기의 판정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롯이 주심에게 있다.

그런데 배구(V리그)는 다르다. 벤치에서 판독을 요청하는 순간, 주심은 거부할 권한이 없다.

판독 이후 최종 판정을 내릴 권한 역시 주심에겐 없다. 비디오판독은 이른바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 감독관으로 불리는 배구인 1명(경기위원)과 심판위원, 그리고 그날 경기 부심으로 구성된 3인 합의체가 진행한다.

그중 최종 결정을 내리고, 이를 발표하는 사람은 경기위원이다. 이 역할은 최소 레전드급 전직 선수, 또는 감독 출신 배구인들이 맡는다.

아무리 레전드라도 이상해보일 수 있다. '심판'이 아닌 사람이 최종 '판정'을 내린다. 주심은 해당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권한도 없다. 관중과 함께 스크린으로 영상을 확인할 뿐이다.

V리그에는 '주심 비디오판독'도 있다. 역시 보다 정확한 판정을 위한 규정이다.

하지만 이때도 주심의 판정 권한은 박탈된다. 보기에 따라 주심이 자신의 권한을 포기 또는 방기하고, 경기위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라고 볼수 있다. 특히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한층 빈번했다. 김연경 등 일부 스타선수들이 거센 항의를 하면 못이기는 척 주심 비디오판독을 요청하는 심판들이 있었다.

이날 대형스크린에도 방영된 리플레이에는 볼에 맞고 흔들리는 블로커의 손가락이 명확히 잡혔다. 하지만 서남원 경기위원의 판단은 달랐다. 그는 '노 터치'를 선언했다.

당연히 OK저축은행에서 들고 일어났다. 디미트로프를 비롯한 선수들은 고성을 질러대며 항의했고, 신영철 감독도 "(손가락이)흔들렸잖아 지금!"이라며 거센 소리를 내뱉었다.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경기위원이 최재효 부심을 다급하게 부른 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

그러자 이번에는 현대캐피탈 벤치가 대폭발했다. 이미 공표된 판정을 뒤집겠다는 발표였기 때문이다. 뒤이어 경기위원은 "확인 결과 터치아웃으로 확인됐다"며 판정을 번복했다.

현대캐피탈로선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필립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은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이번엔 추가 번복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대로 경기가 진행됐고, OK저축은행은 흐름이 꺾인 현대캐피탈을 압도하며 4세트를 따냈다. 세트스코어 3대1 OK저축은행의 승리.

V리그 경기위원들에겐 '원죄'처럼 느껴지는 사건이 있다. 2022년 12월 27일에 열린 KB손해보험과 한국전력의 경기다. 공교롭게도 이날 주심을 맡은 남영수 심판이 당시에는 부심으로 양팀 사령탑과의 소통을 담당했다.

후인정 당시 KB손해보험 감독의 거센 항의로 유명한 경기다. 한국전력 미들블로커 박찬웅의 팔이 네트에 닿는 모습이 명확히 잡히고, 박찬웅 본인도 네트 터치를 인정했다. 공격수가 때린 공은 네트와는 동떨어진 한참 높은 허공을 지나갔다.

하지만 당시 정의탁 경기위원은 다양한 각도의 영상을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네트터치가 아니다'라는 판정을 내렸다. 후인정 전 감독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었다.

그는 평소 차분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격렬한 항의를 장시간 이어갔다. 한때 "이럴 거면 경기 왜 해!"라며 선수들을 코트에서 철수시키기도 했다.

당시 "네트 터치가 아니다. 네트가 흔들린 것은 공에 맞았기 때문", "네트 터치가 맞는데, 이미 아니라고 발표가 됐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심판의 모습이 배구팬들의 기억에 남았다.

이후 연맹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내부 지침을 수정했다. 설령 이미 발표한 비디오 판독 결과를 번복하더라도 '정확한 판정'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것. 이는 연맹 심판 교육 등의 행사를 통해 거듭 강조됐다.

이날 경기가 이처럼 바뀐 입장이 대외적으로 공표된 첫 사례인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연맹 관계자 역시 "설령 번복을 하더라도 정확한 판정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블랑 감독은 이 같은 설명을 납득하지 못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정확하게 판정을 내리는 게 맞고, 설령 잘못된 판정일지라도 이미 심판의 입으로 공표된 판정은 뒤집어선 안된다는 것.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블랑 감독은 이미 흥분을 가라앉힌 뒤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그의 말투는 한층 더 냉랭했다.

그는 "실수라고 하던데, 그런 말로 넘겨도 되는 상황인지 묻고 싶다. 주심이 아닌 사람이 최종 판정을 내리는 리그는 전 세계에서 한국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부터 배구팬들은 연령대가 높은 경기위원들의 비디오판독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표해왔다. 블랑 감독은 이를 현장의 경기인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경기 전체를 관장하는 주심이 있고, 부심도 있다. 왜 여기에 '경기 감독관'이란 존재가 추가돼야 하는지, 비디오판독을 거친 최종 판정을 왜 (주심이 아닌)스크린 뒤의 그가 내리는지 모르겠다."

판독 번복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블랑 감독은 "V리그 심판들은 스스로 규정을 깨뜨린 것이다. 배구 심판으로서 권위와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그는 3년 전 사건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날 남영수 주심은 OK저축은행의 외국인 선수 디미트로프, 그리고 블랑 감독에게 각각 경고를 줬다. 블랑 감독은 이에 대해서도 "OK선수들 대다수가 기록석으로 달려가 공격적인 어필을 했고, 그 과정에서 경기가 상당시간 지연됐다. 그런데 OK저축은행에선 디미트로프 1명, 그리고 내가 똑같이 경고 1개씩을 받았다"면서 "심판은 규정을 준수해주길 바란다"고 거듭 불만을 토로했다.

블랑 감독은 경기 후에도 심판들과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식지 않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신영철 감독은 "처음부터 감독관이 판독을 제대로 했어야 한다"고 지적한 뒤 "감독관이나 심판도 사람이다보니 실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천안=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