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걸그룹 뉴진스가 현 소속사 어도어를 떠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에는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측근들과 나눴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핵심 근거로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 전 대표는 하이브와의 경영권 갈등 속에서 여론전과 독립 시도를 사전에 계획한 정황을 재판부가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정회일)는 지난달 30일 어도어가 뉴진스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 1심에서 "전속계약은 유지돼야 한다"며 어도어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민 전 대표가 뉴진스를 하이브로부터 분리해 독립시키기 위해 여론전, 법적 대응, 증거 수집을 주도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민 전 대표는 지난해 2월부터 측근들과의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독립 계획을 논의했다. 한 측근이 "하이브를 힘들게 하고 우리는 자유를 얻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자, 민 전 대표는 "그럼 좋겠다"고 답했다.
또한 민 전 대표는 지난해 3월 "계획 변경, 4월 3일 1차(공격) 보내고 여론전 준비한다"고 시점을 제시했으며, 실제로 같은 날 하이브에 '뉴진스를 다른 그룹이 베꼈다'는 항의성 메일이 발송됐다. 그는 "핵심 사안으로 (소송을) 걸고, 나머지는 여론전에서 간다"고도 말했다.
특히 민 전 대표는 하이브의 책임을 부각할 자료를 찾으라는 지시도 반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공정위든 상법 위반이든 무엇이든, 증거를 더 찾아보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측근들에게 "○○○○이든, XXXX이든, ○○○이든, XXX이든, 뭔가 더 있을 것"이라고 하이브 산하 다른 걸그룹들을 지목하며 추가 사례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민 전 대표가 하이브 산하 다른 걸그룹과 관련된 문제 사례를 조직적으로 찾아내도록 지시한 대화도 중요하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뉴진스를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어도어의 독립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이브 측의 책임을 만들어내려는 목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민 전 대표는 뉴진스 멤버 부모들의 항의 메일 또한 '전략적 카드'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 전 대표는 "이번엔 어머님들이 직접 메일 보내는 게 어떨까", "남자 아저씨 문투로 바꿔도 된다"고 말하며 여론전 전개를 지시했다.
이어 실제로 지난해 5월 멤버 부모들은 "뉴진스 가치 보호 의지가 부족하다"고 하이브에 항의 메일을 보냈고, 이후 공개적으로 민 전 대표를 일관되게 지지했다.
이번 판결은 K팝 업계에서 오래 문제로 지적돼온 '템퍼링'(타 회사의 핵심 아티스트를 빼가는 행위)에 대해 법원이 명확히 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재판부는 "연예인이 회사의 전폭적 투자로 성공한 후, 경영 문제를 이유로 계약을 쉽게 벗어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송 결과가 나온 뒤 어도어는 "이번 판결이 아티스트들에게 상황을 돌아볼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복귀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뉴진스 멤버 측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세종은 "신뢰가 이미 파탄난 상황에서 복귀는 불가능하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