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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를 만났을 뿐 슈와버도 자격 있다, 지명타자 MVP 시대의 도래[스조산책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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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메이저리그 역사상 올해처럼 지명타자가 양 리그를 공히 지배한 적은 없었다.

BBWAA(전미야구기자협회)가 지난 4일(한국시각) 공개한 양 리그 MVP 후보 파이널리스트 6명이 올해 지명타자로 선발출전한 경기수 비율을 계산해 보니 44.5%였다.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보면 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는 설명이 필요없는 지명타자다. 선발등판하지 않는 날엔 늘 리드오프 지명타자로 나섰다. 지명타자로 144경기, 투수로 14경기에 각각 선발출전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카일 슈와버도 지명타자 전문이다. 전경기에 출전한 슈와버는 지명타자로 154경기, 좌익수로 8경기에 각각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뉴욕 메츠 후안 소토는 157경기에서 우익수로, 3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AL로 넘어와서 포수 관련 홈런 기록을 다수 써내려간 시애틀 매리너스 칼 롤리도 지명타자로 38경기나 선발출전했다. 포수로는 119경기로 나서 지명타자 비중이 24.2%나 된다.

뉴욕 양키스 애런 저지는 선발출전 경기수가 우익수로 95경기, 지명타자로 56경기다. 2016년 데뷔 이후 지명타자 비율(37.1%)이 2023년 다음으로 높았다. 이는 저지가 지난 7월 팔꿈치 부상을 입어 8월 6일 복귀 후 9월 초까지 지명타자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명타자는 저지가 통산 20%의 비율로 선발출전했으니 익숙한 자리임에 틀림없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호세 라미레즈는 본업인 3루수로 132경기, 지명타자로 26경기에 각각 선발출전했다. 지명타자 비중이 16.5%에 이른다.

오는 14일 발표 예정인 양 리그 MVP는 NL은 오타니가 확정적이고, AL은 롤리와 저지의 치열한 2파전다.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이슈는 오타니가 생애 4번째 MVP도 만장일치로 거머쥐느냐다. 투타 겸업을 본격화한 2021년과 생애 첫 홈런왕에 오른 2023년, 다저스 이적 후 첫 시즌 50홈런-50도루를 달성한 2024년, '오타니=MVP'에 이견을 단 기자는 없었다.

하지만 올해도 NL 투표 기자단 30명 전부가 오타니를 지지할 지 확신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지명타자 전문 슈와버의 활약상에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NL 홈런 1위(56개), 양 리그 합계 타점 1위(132개)를 차지했다. 모든 통계 부문서 커리어 하이를 찍은데다 필라델피아의 NL 동부지구 우승을 이끌었다는 점은 분명히 평가받아야 한다.

특히 슈와버는 지난달 말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의 'NL 아웃스탠딩 플레이어(NL Outstanding Player)'에 선정됐다. 이 상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즉 선수들은 슈와버가 오타니보다 뛰어난 시즌을 보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타니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슈와버가 전경기에 출전해 리드오프로 팀 공격을 이끌며 필라델피아가 다저스를 제치고 디비전시리즈에 직행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사실이 부각돼야 한다는 것이다. 홈런-타점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하는 것 역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명타자가 MVP 투표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건 전적으로 오타니의 공이라고 봐야 한다. 그는 지난해 1973년 지명타자가 등장 이후 최초로 지명타자 MVP가 됐다.

이전에 지명타자가 MVP가 될 수 없었던 건 수비를 하지 않는 '반쪽 선수'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오타니가 등장해 역사적인 대업을 세우면서 이러한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작년 오타니가 50-50에 근접할 다시 동료들의 말을 되새겨보자.

프레디 프리먼은 "난 지명타자는 MVP 돼서는 안 된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나 오타니가 올해 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지명타자가 MVP가 될 수 없다는 걸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클레이튼 커쇼는 "MVP는 가장 가치있는 것들을 모두 망라해야 한다. 수비가 일정 부문 그 역할을 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공격력이 너무 뛰어나면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다. 오타니가 MVP 자격이 있다"고 했다.

슈와버도 이런 찬사를 들을 만하다. 다만 그는 올해 오타니를 만났을 뿐이다. 만약 1개라도 이탈표가 나온다면 그건 슈와버로 향했을 것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