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외야는 비어있다고 봐야 한다. 이정후는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외야수 이정후가 큰 위기에 봉착했다. 구단이 큰 기대감을 갖고 거액의 포스팅 비용을 투자했지만, 몸값 대비 효용가치가 크게 떨어진다는 게 이제 만천하에 드러나버렸다.
냉정히 말해 '거품이 다 걷힌' 상황이라 최악의 경우 주전자리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구단 최고 수뇌부가 공개적으로 이정후의 진화를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2025시즌 메이저리그 2년차이자 풀타임 첫 시즌을 치르면서 자신의 실력과 한계를 모두 드러내보였다. 스스로도 많은 깨달음을 얻은 시즌이었다. 그는 지난 9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아프지 않고 150경기를 뛴 것 외에는 만족스러운 기록이 없다. 더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다고 볼 만 하다.
이제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2026시즌에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할 듯 하다. 현재 팀 안팎의 상황이 이정후에게 우호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지 매체 뿐만 아니라 구단 내부에서도 이정후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는 분위기다.
물론 이런 비판적인 분위기가 이정후 한 명에게만 집중된 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구단 자체가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탓에 팀 전력상황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이정후에게도 불똥이 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매체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구단과 이정후를 향한 채찍질을 주도하고 있다. 이 매체는 12일(이하 한국시각)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2025시즌에 MLB 최악의 외야 수비력을 보여줬다. 이런 문제는 오프시즌에서 버스터 포지 사장의 머리에 남아 있을 숙제다'라고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가 오프 시즌에 경쟁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 지를 진단하는 내용이다. SF 크로니클은 '샌프란시스코의 오프시즌 초점은 일단 선발과 불펜을 포함한 투수력 보강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야진의 공격생산성과 수비력이 모두 발전돼야 한다. 포지 사장은 외부 영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지 사장의 발언은 더욱 심각하다. 그는 "현재 팀의 외야는 비어있다고 봐야 한다. 오프시즌 동안 어떻게 보강할 수 있는 지 보겠다"며 고정된 주전 외야수는 없다는 식의 강경 발언을 했다. 이는 이정후와 엘리엇 라모스를 향한 발언이다. 포지 사장은 "라모스와 이정후 모두 발전의 여지가 있지만, 확실한 건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이를 해석하면 이정후의 수비력이나 팀 기여도가 올해 수준에 그친다면, 외야 주전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경고나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에는 라모스도 해당한다. 라모스와 이정후는 각각 올해 주전 좌익수와 중견수였다. 그러나 이들의 수비지표는 나란히 MLB 최악수준에 그쳤다.
이정후는 수비력 측정 지표인 '평균대비 아웃기여도'(OAA) 부문에서 -5에 그치며 MLB 전체 중견수 중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또 다른 수비력 측정지표인 '수비 런세이브(DRS)'는 무려 -18이었다. 이는 800이닝 이상 경기에 나선 내셔널리그(NL) 전체 외야수(코너 및 중견수)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황당한 실책도 저질렀다. 9월 27일 콜로라도전 때는 중견수 플라이를 처리한 뒤 아웃카운트를 착각하고 공을 관중석으로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이정후나 라모스는 수비력 면에서 보면 '마이너리거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포지 사장은 과감하게 이정후와 라모스를 향해 '업그레이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후가 오프시즌을 통해 공격력 뿐만 아니라 수비 능력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올해처럼 팀의 중심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MLB는 냉정하다.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바로 그에 맞는 처분을 내린다.
이정후가 중견수로서 가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일단은 코너 외야로 이동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다음 단계는 백업 전환이다. 더 못하면 마이너리그 행 또는 트레이드다. SF크로니클은 이미 여기까지 내다보고 있다. 이 매체는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를 코너로 이동시킨다면 FA 중견수인 트렌트 그리샴이나 해리슨 베이더를 영입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결국 모든 것은 이정후가 올 겨울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구단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이정후의 앞에는 험난한 가시밭길만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