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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만 보지마! 감동이 없잖아?' LAD 로버츠 감독, 월드시리즈 2연패에도 '올해의 감독상' 득표 제로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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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비싼 선수 잔뜩 데리고 우승한 게 뭐 대수라고.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현재 명실상부 메이저리그(MLB) 최고의 명장이다. 지난 2016년부터 10년간 다저스를 이끌며 최고의 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구(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 9번을 포함해 10년 연속 다저스를 포스트시즌에 올려놨으며, 그 중 3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했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가 선정하는 '올해의 감독상'과는 인연이 없다. 다저스 부임 첫 해인 2016년에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이후 9년 연속으로 수상에 실패했다. 그래도 투표 순위에서 상위권에는 랭크되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매우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 로버츠 감독에게 단 한 명도 투표하지 않았다.

MLB닷컴은 12일(이하 한국시각) BBWAA의 투표로 선정된 양대리그 올해의 감독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내셔널리그(NL)에서는 팻 머피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이 2년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머피 감독은 유효표 30표 중에서 1위 27표, 2위 2표 등을 얻어 총점 141점을 기록했다. 2위는 테리 프랑코나 신시내티 레즈 감독(49점)이었다.

아메리칸리그(AL)에서는 스티븐 보트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감독이 선정됐다. 역시 2년 연속 수상이다. 보트 감독은 유효표 30표 중 1위 17표, 2위 8표, 3위 4표 등을 얻어 총점 113점을 기록했다. 월드시리즈 준우승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존 슈나이더 감독(91점)을 간발의 차이로 제쳤다.

그런데 이번 투표에서는 특이한 점이 하나 발견됐다. 월드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로버츠 감독이 1위는 고사하고 3위표 한 장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충분한 이유가 있다. 사실 이 투표는 정규리그 종료 이후에 진행된 것이다. 때문에 포스트시즌 결과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즉, '월드시리즈 2연패 프리미엄'은 없었다는 뜻이다.

결국 정규리그에서 보여준 팀 운영스타일과 성적만으로 '올해의 감독상'이 결정됐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로버츠 감독이 표를 얻지 못한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또한 NL과 AL에서 모두 2년 연속 수상자가 나온 것도 이해가 된다.

우선 BBWAA는 '올해의 감독상' 투표 때 전체 시즌의 여정과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NL 감독상 팻 머피를 보자. 일단 머피 감독이 이끄는 밀워키는 정규시즌 97승65패, 승률 0.599로 MLB 전체 승률 1위를 찍었다. 여기서 일단 플러스 점수.

게다가 감동적인 반전드라마까지 찍었다. 밀워키는 시즌 개막 전부터 '약체'로 분류됐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커녕 지구 1위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실제로 7월 초까지 NL 중부지구 2위였다. 그러나 이후 무려 14연승을 기록하는 등 강력한 '후반기 질주'를 펼쳤다. 미디어가 좋아하는 '스토리 텔링'이 자연스럽게 갖춰졌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결국 리그 최고승률까지 찍은 머피 감독에게 표가 쏟아지지 않을 수 없다.

MLB닷컴은 '2년 연속 오프시즌에서 주요 전력이 빠져 어려운 싸움을 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머피의 지휘 덕분에 밀워키는 전망을 뒤집어버렸다'면서 '머피 감독은 넉넉치 않은 팀 예산 상황 속에 선수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작지만 강한 팀의 좋은 사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감동적인 스토리까지 갖춘 머피 감독에게 '올해의 감독상'표가 쏟아질 수 밖에 없다.

AL 쪽도 상황은 비슷하다. 클리브랜드 가디언스를 이끈 보트 감독은 올해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펼쳤다. MLB닷컴은 '보트 감독은 시즌 도중 무려 15.5경기 차이를 뒤집으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제치고 클리블랜드를 AL 중부지구 1위로 올려놨다'며 '2024년 신인 감독으로 데뷔해 올해 여러 논란을 겪으면서도 결국에는 가장 큰 전세를 뒤집은 사령탑으로 박수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들 두 감독들의 수상 결과와 그에 대한 설명을 보면 BBWAA가 추구하는 '올해의 감독상'의 모델을 알아낼 수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쓰면서 대형 FA를 수집하고, 그 힘으로 우승을 차지한 감독에게는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더라도 표를 주지 않는다.

대신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선수들을 이끌면서, 그 과정에서 감동적인 역전 드라마를 만든 '진정한 감독'으로 높이 평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기준점에서 보면 로버츠 감독은 결코 '올해의 감독'을 받기 어렵다.

로버츠 감독은 올해 정규시즌에서 막강한 선수들을 동원해 지구 1위를 유지하다가 시즌 후반에는 추락을 막지 못하고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그나마 다시 1위를 탈환하고 정규시즌을 마쳤지만, 여기에 특별한 감동드라마의 요소는 별로 없다. 이러면 표를 받을 수 없다. BBWAA의 기준은 이렇듯 명확하다. 감동을 주지 못하면 표도 없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