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FA대박을 터트리려면 실력 외에 운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김하성은 그런 '운'을 타고난 듯 하다.
김하성이 올 겨울 스토브리그에서 의외의 FA대박을 터트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FA시장 상황이 특이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FA시장에 유격수의 씨가 말랐다. 이로 인해 김하성에게 러브콜이 쏟아질 수도 있다. '희소성 프리미엄'을 누리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현재 김하성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는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일이 보라스의 뜻대로 풀린다면 장기계약을 통해 총액 1억달러(약 1466억원)에 근접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듯 하다.
김하성은 올해 최악의 위기를 딛고 부활의 가능성을 알렸다. 원래 김하성은 올해 초 탬파베이와 1+1년 2900만달러에 FA계약을 맺은 뒤 성공적인 재활을 거쳐 시즌 종료 후 'FA 재도전'을 노렸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재활 중 햄스트링 부상이 발생하며 복귀가 지체되면서 7월에야 빅리그에 돌아올 수 있었다.
빅리그에 복귀한 뒤에도 기량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특히 종아리와 허리 부상이 발생하며 두 차례나 부상자 명단(IL)에 들어가는 불운이 겹쳤다. 좀처럼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 탓에 공격에서도 저조한 모습만 보였다. 결국 탬파베이에서는 단 24경기 출전에 그치며 타율 0.214(84타수 18안타) OPS 0.611에 그치더니 9월에 방출통보까지 받았다. 커리어 최대 위기였다.
그나마 유격수 자원이 부족한 애틀랜타 구단이 웨이버 클레임을 걸어 김하성을 데려가며 커리어 부활의 기회가 생겼다. 김하성은 애틀랜타 합류 이후 건강한 모습을 회복하며 2023시즌 내셔널리그(NL)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 수상자의 위용을 잠시나마 보여줬다. 애틀랜타에서도 24경기를 소화한 김하성은 타율 0.253(87타수 22안타) OPS 0.684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애틀랜타에서 부활의 기미가 보이자 김하성은 내년 시즌 1600만달러(약 234억원)의 보장 연봉을 뿌리치고 옵트아웃을 선언하며 FA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초 이같은 김하성의 선택은 무리수로 여겨졌다. 애틀랜타에서 잠깐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여전히 낮은 타율과 부상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FA시장에서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현지 매체의 전망이 쏟아져 나온 이유다.
특히 글로벌 스포츠매체 ESPN은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각) '2025 FA 랭킹 50'을 발표하며 김하성을 겨우 46위에 배치했다. 이 매체는 심지어 김하성에 대해 ""모든 면에서 퇴보했다"는 참담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 이유로 "올해 빅리그 데뷔 후 최악의 시즌을 보낸 김하성은 1600만달러의 선수옵션을 거부하고 FA시장에 나왔다"면서 "어깨 수술 이후 탬파베이와 애틀랜타에서 총 48경기를 뛰는 데 그친 김하성은 모든 면에서 퇴보했다. 허리 부상까지 겹쳤고, 송구의 속도는 어깨 수술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2025년은 김하성에게는 '잃어버린 시즌'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악평을 남기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하성의 FA선언은 실패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올 겨울 FA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김하성이 분명 예전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의외의 고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전망이다.
가장 큰 이유는 FA시장에 유격수 자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FA를 선언한 선수 중 유격수 1순위는 자타공인 보 비셋이다. 그런데 현재 시장에서 비셋은 유격수 보다는 2루수 자원으로 더 각광받는 분위기다.
유격수로서의 수비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데이터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올 시즌 비셋의 OAA(Outs Above Average)는 불과 -13에 그치고 있다. MLB 유격수중 최하위권이다. 이로 인해 비셋을 유격수보다는 2루수 자원으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MLB닷컴은 지난 12일 '비셋은 2019년 데뷔 후 계속 유격수로 나왔지만, 무릎 부상으로 인해 포스트시즌 첫 두 라운드(디비전시리즈·챔피언십시리즈)에 모두 빠졌다. 이어 월드시리즈에서는 2루수를 맡았다'며 '주전 유격수를 보유한 구단들은 비셋을 2루나 3루수로 보고 영입하려 한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유격수 수비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김하성을 능가할 만한 FA 자원이 없는 상황이다. '악마의 에이전트'로 불리는 보라스는 바로 이런 시장 판도를 정확히 읽어내고 있다.
보라스는 13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된 메이저리그 윈터 미팅 현장에서 진행한 현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김하성 정도 수준의 수비력을 갖춘 유격수가 없다. 유격수나 2루수 부문의 수비력을 개선하길 원하는 팀이라면 김하성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하성은 건강을 되찾았고,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며 충분히 제 몫을 할 자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 보라스의 코멘트에는 딱히 반박의 여지가 없다. 현재 FA시장에 김하성을 능가할 만한 수비력을 지닌 선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김하성이 건강을 회복한 모습을 시즌 막바지에 확인시켜준 것 또한 사실이다. 보라스는 절묘하게 두 가지 팩트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김하성의 시장가치를 몇 배나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급한 쪽은 김하성이 아니라 구단들이다. 수비의 핵심인 유격수 뿐만 아니라 2루수까지 소화 가능한 건실한 수비수를 외면할 수는 없다.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곧 김하성의 시장가치가 급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라스가 주도하는 협상의 판이 이어질 경우 김하성은 또 다른 대박계약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크다. 한 마디로 '운'과 '돈복'이 따라붙었다고 볼 수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