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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웃] 'AI-팝'의 시대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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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유튜브에서 중년 남성의 노래가 큰 주목을 받았다. 54세 목수 에르네스토 비렐이 아내와 아들을 그리며 부른 노래 '아임 스틸 웨이팅 앳 더 도어(I'm still waiting at the door)'. 인생의 고단함이 묻어있는 표정과 애절한 목소리. 미국 경연 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의 한 장면으로 구성된 것도 감성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른 비렐은 세상에 없다. 이름도 사연도, 목소리도 모두 인공지능(AI)이 합성했다. 하지만 그 슬픔이 진짜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사례는 개별적 현상이 아니라 음악산업 변화의 징후다. AI 가수 브레이킹 러스트의 '워크 마이 워크(Walk My Walk)'가 15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 컨트리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1위에 올랐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300만 회 이상 재생됐다. 빌보드는 최근 몇 달 새 "최소 6팀 이상의 AI 또는 AI 지원 아티스트가 차트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다만 디지털 판매 차트가 소규모 다운로드로도 1위가 가능하다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진정한 대중의 선택인지, 알고리즘과 마케팅의 산물인지 구분이 필요하다. 음악산업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 AI 가수를 둘러싼 논쟁은 격렬하지만, 대중음악계에 AI의 침투는 시작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김형석 씨는 최근 건국대에서 'AI와 K-팝'이란 주제의 특강에서 현 대중음악계 흐름을 '전문가 시대의 종말'로 규정했다. AI 기술 발전으로 기능적 장벽이 무너졌고, 연마의 시간을 건너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디어에서 연마를 거쳐 결과에 이르는 일련의 제작 과정이 AI로 단축되면서 인간의 창작 방식도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AI와 구별되는 인간 창작자의 자리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그는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오는 서사, 감성의 깊이, 인문학적·철학적 성찰을 꼽았다.

이 같은 언급은 AI-팝 확산의 역설을 설명해준다. 팬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K-팝이 구축한 아티스트와 팬의 수평적 관계, 커뮤니티의 힘은 감상의 기준을 바꿔놓았다. 중요한 건 '누구'가 아니라 '무엇을 공감하느냐'에 있다. 비렐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다시 영상을 틀었다. 브레이킹 러스트의 합성된 음색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주저하지 않았다. 음악은 원래 감성의 교환물이다. 지금은 데이터가 감성을 만들고, 감성이 다시 데이터를 낳는 순환 구조 속에서 대중음악의 자리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AI-팝은 현실로 다가왔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대세라면 인정하되, 수용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 외연을 확장하고 내실을 다지는 방향이 돼야 한다. 과제도 만만치 않다. 당장 저작권과 학습 데이터 보상 체계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또 인간 창작자의 역할을 감성·서사·철학적 깊이로 재정의하는 방향 설정도 요구된다. AI 음악의 투명한 표기 제도와 차트 시스템의 공정성 확보도 시급하다. 기술이 감성을 생산하는 시대를 맞아 음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지점에 서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