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긴 세월이라는 뜻이다.
하나은행이 지난 17일 홈인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BNK금융 2025~2026 여자프로농구' 시즌 첫 경기에서 우리은행을 66대45로 대파한 것이 초반부터 '센세이션' 그 자체인 이유다.
하나은행은 2016~2017시즌부터 시작해 지난 2024~2025시즌까지 무려 9년간 홈인 부천에서 우리은행을 단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무려 27연패.
하나은행이 이 기간 중 최하위 4번, 5위 3번 등 만년 하위권에 머물 정도로 전력이 약하기도 했지만 이런 와중에도 3위와 4위를 한차례씩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특정팀에게 철저히 눌린 것은 '징크스'인 셈이다. 말 그대로 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날 경기가 끝난 후 퇴장하는 관중들 사이에서 "홈에서 우리은행 이기는 것을 처음 봤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무려 10번째 시즌만에 꼬인 실타래를 스스로 풀어낸 것보다 그리고 지난 시즌 최하위가 정규시즌 1위를 잡아낸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공수 모두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점이다. 하나은행은 아시아쿼터 선수로 지난 시즌 BNK썸의 챔프전 우승을 이끈 이이지마 사키의 영입을 제외하곤 별다른 전력 플러스 요인이 없었던 반면, 우리은행은 베테랑 강계리와 수준급 아시아쿼터 선수 세키 나나미 영입에다 부상 선수들의 복귀로 지난 시즌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가용 자원이 풍부해진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나은행은 1쿼터 중반에 재역전을 한 이후 단 한번도 리드를 뺏기지 않았다. 리바운드 싸움에서도 49-32로 크게 이겼는데, 특히 공격 리바운드를 14개나 잡아낸 것이 압승의 비결이 됐다. 베테랑 김정은을 비롯해 8명의 선수가 모두 10분 이상을 뛰었고, 가장 오래 코트에 머물렀던 진안이 29분 30초에 그친 것에서 나타나듯 철저한 로테이션으로 선수를 기용했다. 8명이 모두 득점과 리바운드를 기록한 것은 물론 정현, 사키, 정예림, 박소희, 고서연 등 5명이 3점포를 터뜨리며 우리은행의 수비를 혼란시켰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도 경기 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듯 모든 선수들이 리바운드와 공격에 가세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나은행이 분명 지난 시즌과는 다른 팀이 됐다"며 "이상범 감독의 지도로 좋은 자원의 선수들이 운동 능력까지 갖추게 된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위 감독의 평가대로 남자농구에선 베테랑 사령탑이었지만, 여자농구에는 새내기인 이상범 감독이 훈련량을 2~3배로 늘리며 체력을 올린데다 노련한 선수 조련 방식을 접목했고, 오랜 기간 하위권에 머물면서 뽑힌 최상위권 신인 선수들이 이에 적응하면서 첫 경기부터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범 감독은 "상대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이지, 우리 선수들의 실력으로 이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도 "기술이 아직 많이 부족하기에 오늘 경기처럼 상대보다 한발 더 뛰는 농구를 할 수 밖에 없다"며 그동안의 무기력했던 하나은행과는 분명 다른 스타일의 팀 컬러를 예고했다.
4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우리은행이 위성우 감독 부임한 지난 2012~2013시즌부터 완전히 바뀐 스타일로 10년 넘게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데, 하나은행이라고 이를 재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언더독의 '유쾌한 반란'이 이어질지, 하나은행의 다음 경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