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웅어(熊漁)는 임금께 진상하던 청어목 멸치과의 물고기로 바다와 강을 오가는 회유성 어종이다.
서해안과 남해안 강 유역에서 주로 서식하며 조선시대에는 38개 현에서 특산물로 잡혔다고 한다.
4월에 산란기를 맞아 서해에서 한강 하류로 거슬러 올라와 조수가 드나드는 '갈대밭에 알을 낳는다'고 해서 갈대 '위(葦)' 자를 써 '위어(葦魚)'라고도 불렸다.
겸재 정선의 작품 중에는 웅어잡이 배를 그린 '행호관어도'가 있다. 행호(幸湖)는 행주산성 아래 한강 하류가 호수처럼 보여 붙은 명칭이다. 이곳에는 갈대가 무성해 웅어 서식지로 유명하다. 지금의 경기 고양시 지역인 한강 하류엔 웅어를 잡아 수라상에 올리기 위한 위어소가 설치됐다.
그러나 지금은 웅어란 이름조차 생소해졌다. 어획량은 20년 새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행주어촌계 어업인들은 해마다 잡히는 웅어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러다가는 '행주 웅어'는 이름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나온다.
어획 감소의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지만, 기후 변화에 따른 수온 변화를 비롯한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추정만 제기된다.
◇ "그물 터질 정도로 잡혔는데"…'위어소' 명성은 옛말
조선시대 궁중의 식자재를 담당한 사옹원이 위어소를 설치한 행주나루터 일대는 웅어가 많이 잡히던 지역이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으로, 어린 웅어가 서해로 내려가서 성장했다가 산란을 위해 한강 하구로 올라오는 습성과 맞아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린 웅어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바다에 내려가 겨울을 지내고 이듬해 봄 성어가 돼 고향으로 돌아온다. 성질이 급해 멸치나 갈치처럼 그물에 잡혀 육지에 올라오는 즉시 죽고, 양식도 불가능하다.
1980년대 한강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까지 웅어 철이 되면 한강 하류는 웅어로 가득 찼다.
당시 행주나루 어민들은 웅어를 잡아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강 일대에서 웅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1987년 한강 종합개발사업의 하나로 설치된 신곡수중보로 인해 물길이 막혔고, 강변 개발로 산란 장소인 갈대숲이 사라졌기 때문이란 의견도 있다.
기수역은 다양한 어류와 생물 종의 산란지이며 치어들의 성장 장소로 활용된다. 그러나 서해와 임진강에서 밀려오는 토사를 신곡보가 가로막아 그대로 쌓이고, 물골(밀물과 썰물의 흐름이 세찬 곳)이 사라지면서 어류의 산란·회유 통로가 차단됐다.
아울러 치어를 잡아먹는 유해 생물인 끈벌레가 창궐하고 웅어와 뱀장어가 감소하면서 수생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자연스럽게 접할 일이 줄어들면서 수도권에서 웅어는 점차 잊혀 가고 있다.
지난 19일 행주나루터에서 만난 행주어촌계 어업인 한상원(67) 씨.
28년째 행주나루에서 어업을 이어가는 그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해 봄(3∼5월)이면 행주어촌계에서 평균 5t의 웅어를 잡았다"면서 "해가 갈수록 어획량이 줄어 올봄에는 0.5t밖에 잡지 못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르신들이 1980년대 이곳에서 조업했을 때는 그물이 터질 정도로 정말 많은 웅어가 잡혔다"면서 "온난화로 인한 수온 변화 때문인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해가 갈수록 웅어가 잡히질 않아 답답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어 "10여년 전에는 하루에 30㎏의 웅어를 잡을 때도 가끔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점점 웅어가 자취를 감춰 구경을 못 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 수온 변화 탓인가…"치어 확보·방류 등 대책 필요"
행주나루에서 웅어가 줄어든 이유로 일부 전문가는 기후 변화로 수온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점을 꼽는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연안 수온 정보에 따르면 서해의 수온 관측치는 올해 2월 초(4∼10일) 3.6도로 작년보다 1.5도 낮았고, 2월 18∼24일은 전년보다 2.6도 낮았다.
이런 저수온의 영향으로 올해 2∼4월 경인지역 주꾸미 위판량도 지난 2020년보다 77.8%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강해지는 저수온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꼽는다. 기후변화로 겨울철 이상 한파가 강해질수록 봄 바다의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도 강해진다는 것이다.
수산과학원은 '2023 수산 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서'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철 고수온과 함께 겨울철 저수온이 강화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현재 웅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자료가 없어 정확히 어획량 감소에 대해 답변할 수는 없다"면서도 "기후 변화로 연근해에 사는 웅어가 수온에 민감하게 반응해 다른 적합한 환경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사라져가는 토산 어종을 다시 하천에 되살리는 것은 수산 생태계 회복뿐만 아니라 지역 어민의 소득 증대에도 의미 있는 성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며 "앞으로 웅어 보존을 위해 치어 확보와 방류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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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