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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발 금산분리 완화 논의에 주병기 신중론…"최후의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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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인공지능(AI) 투자와 관련한 금산분리 완화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최후의 수단"이라며 신중론을 견지했다.
경쟁당국 수장으로서 재벌의 사(私)금고식 금융 지배 폐해를 막기 위한 금산분리의 취지를 강조한 발언이다.
주 위원장은 첨단산업 투자 촉진을 위해 필요하면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재계의) 민원성 논의가 주를 이루는 것 같아 불만"이라며 직설적인 표현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쏘아 올린 금산분리 완화를 두고 관계 부처가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고심하는 가운데, 국가 전략산업 육성과 금융 안정이라는 두 정책 목표 사이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을지 주목된다.

◇ "첨단산업투자 활성화 필요하다면 검토…신중해야"
주병기 위원장은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금산분리 완화에 관해 대안이 있다면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일단 브레이크를 걸었다.
금산분리란 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거나 산업 부실이 금융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다. 대기업 일반지주회사가 국내 금융·보험사의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규정이 대표적으로, 공정위가 주무부처다.
주 위원장은 "첨단 전략 산업에 대한 투자 활성화 필요성은 전반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며 "어떻게 투자를 활성화할 것인지 공정위를 포함해 경제부처, 대통령실이 여러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중 일부에서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제안도 있다"며 "투자 활성화의 방법으로 완화가 필요하다면 필요성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금산분리 완화가 최후의 카드나 수단이라는 의미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며 "다른 대안이 있으면 그 대안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데, 정 다른 방법이 없다면 금산분리 완화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략 산업 투자 분야로 ▲ 주력 산업 시설투자 ▲ 벤처캐피탈 투자 ▲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업 육성 ▲ 데이터 인프라 등을 꼽았다.
그는 "이 네 투자 분야 중 어느 곳이 자본 시장을 통한 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더 많이 겪고 있는지 검증해 정부의 국민성장펀드가 투입되는 것이 맞고, 이런 큰 그림 속에서 현재의 규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데이터 등 인프라는 우리 대기업도 투자하기가 만만치 않아 분명 국가의 역할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주 위원장은 공정위 수장으로서 원칙적으로 금산분리 완화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경제력 집중이나 독과점 폐해는 아직도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며 "금융기관을 통한 산업 부문의 지배력 확장 문제, 경제력 집중의 문제가 상존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 상황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려면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관계부처 간 논의에서 이같은 공정위의 특수성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소개했다.
그는 "각 부처의 역할과 목적에 따라 서로 독립적으로 소통한다면 훨씬 더 건설적인 방안이 나올 것"이라며 "각각의 위치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을 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좋은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경제력 집중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첨단전략산업 분야 투자를 촉진할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며 "여러 조건을 고려해 부처 간 최선의 방안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 "민원성 논의 불만…규제 탓만 하고 투자 안 하는 게 문제"
주 위원장은 금산분리 완화 논의가 재계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으로 비친다며 강한 어조로 지적을 쏟아냈다.
그는 "불만스러운 것은 이런(금산분리 완화) 논의가 다양한 시각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너무 한쪽 측면에서 일종의 민원성 논의가 주를 이루는 것 같아서 상당히 불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꾸려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방지하는 방안,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서구에서는 100년 된 규제를 현재 일부 사안, 몇 개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기업들이 본업에 충실해 연구개발(R&D) 혁신을 계속하는 것으로, 그동안 전략산업 분야에서 잘나가는 기업은 이런 투자를 잘 해왔다"며 "주요 기업이 규제 탓만 하고 투자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본업에 투자하는 데 과연 금산분리 완화가 필요한지 우리 사회가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라며 "(향후) 필요한 자금이 10년 동안 몇백조원인데, 이게 어렵다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이 때문에 규제를 허무는 실수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투자회사를 만들어 이미 큰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등으로 유니콘 기업이 될 작은 씨앗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금산분리 원칙이 허들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SK 혜택 논란…금산분리 대원칙 훼손 우려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챗GPT 개발업체인 오픈AI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자리에서 AI 분야에 한해 금산분리 등 규제 일부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며 관련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부는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근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로 일부 완화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여당에서도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첨단전략산업에 투자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한 번 빗장이 열리면 다른 분야까지 예외를 요구하며 수십년간 만들어온 금산분리 대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당 발의안대로라면 SK그룹만 혜택을 본다는 지적도 있다. 오픈AI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설비투자를 대폭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이중 SK만 지주회사 체제이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SK 위해 금산분리 원칙 또 훼손하나'라는 논평에서 "AI 투자 확대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특정 재벌 맞춤형 규제 완화"라고 비판했다.
이에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20일 대한상의 회장 자격으로 제2차 기업성장포럼에 참석해 "저희는 금산분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규모 AI) 투자를 감당할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게 제 생각"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2vs2@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