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韓, ODA 한파에도 1억불 약속 지켰다…글로벌펀드 투표권 확보

by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각국이 지갑을 닫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가 국제 보건을 위한 의미 있는 결단을 내렸다.
내년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이 14%나 삭감되는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은 감염병 퇴치를 위해 글로벌펀드에 지난 회차와 동일한 1억 달러(약 1천470억 원) 지원을 약속하며 국제사회의 신뢰를 지켰다.
이로써 한국은 글로벌펀드 내에서 단순한 기여국을 넘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투표권 있는 이사국' 지위를 20년 만에 거머쥐게 됐다.
23일 비영리단체 국제보건애드보커시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8차 재정공약 정상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2026년부터 2028년까지 3년간 총 1억 달러를 기여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글로벌펀드 측은 한국을 "강력한 의지를 유지한 공여국"으로 치켜세우며, 한국이 이사회 투표권을 가진 이사국으로 승격됐음을 알렸다.
이는 글로벌펀드 설립 초기인 2006년 이후 처음으로 투표권 보유 국가가 추가된 사례로, 국제 보건 무대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확대됐음을 방증한다.
이번 공약은 단순한 '퍼주기식' 원조가 아니다. 우리 바이오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확실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펀드는 매년 약 25억 달러 규모의 의료 물품을 구매하는 '큰손'이다. 한국은 이 시장에서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2010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펀드에 공급한 진단기기와 의약품 규모는 약 8억4천900만 달러(약 1조2천48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공급국 중 6위에 해당하는 실적이며, 특히 진단기기 분야에서는 압도적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낸 기부금이 결국 우리 기업의 수출 실적으로 되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된 셈이다.
이번 회의의 전체 모금 분위기는 녹록지 않았다. 글로벌펀드는 애초 180억 달러 모금을 목표로 했으나, 최종적으로 113억4천만 달러를 조성하는 데 그쳤다.
일본, 프랑스 등 전통적인 주요 공여국들이 자국 내 경제 사정을 이유로 공약 발표를 미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기존 공약액을 유지한 것은 국제 사회에 강력한 연대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장에 참석한 국제보건애드보커시 한희정 대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약속을 지킨 한국 정부의 결정은 한국 보건 산업의 기술 혁신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계기"라고 평가하며, "이번 이사국 진출이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조달 시장 접근성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이 보여준 이번 '1억 달러의 약속'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국제 사회에서의 외교적 위상 강화와 국익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실리 외교의 성과로 기록될 전망이다.
글로벌펀드는 에이즈·결핵·말라리아 등 3대 감염병 퇴치를 위해 2002년 설립된 세계 최대의 국제 민관협력 기구다. 매년 약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조성해 100여 개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 설립 이후 현재까지 7천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으며 한국은 2018년부터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집행이사회 이사국으로 활동 중이다.
국제보건애드보커시는 외교부에 등록된 국내 유일의 글로벌보건 정책 애드보커시(옹호) 비영리단체다. 2011년부터 글로벌펀드와 협력해 왔으며 주요 20개국(G20)과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 시민사회 대표로 참여해 전 세계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sh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