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1선발로는 약하지 않을까."
두산 베어스가 우완 크리스 플렉센과 재결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때였다.
한 야구인은 "플렉센을 2선발로 쓰기 위해서 뽑는다면 괜찮다고 보지만, 플렉센을 1선발로 쓰기 위해서 영입하고 잭로그와 재계약한다면 조금 약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두산은 올해 9위로 정규시즌을 마치고 공격적으로 전력 보강을 하고 있었다. SSG 랜더스에서 2022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이끌었던 김원형 감독에게 새 지휘봉을 맡기고, FA 최대어 박찬호를 4년 80억원에 샀다. 투수 이영하와 최원준, 외야수 조수행 등 내부 FA 단속도 속전속결로 해냈다. 내년에는 성적을 내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한 움직임이었고,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외국인 선수 구성에 당연히 공을 들여야 했다.
플렉센은 2020년 두산과 한 시즌을 함께했다. 뉴욕 메츠 유망주 출신. 2017년 빅리그에 데뷔해 2019년까지 3시즌 동안 27경기(선발 11경기)에 등판했으나 기회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빠른 구위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제구가 문제였다. 메츠가 플렉센을 포기할까 고민하는 틈을 파고들어 두산은 당시 26살 어린 강속구 투수를 품을 수 있었다.
플렉센은 KBO리그에서 초반에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구단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문제점을 수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7월 중순 왼발 골절로 약 2개월 공백이 있었지만, 시즌 21경기에서 8승4패, 116⅔이닝, 평균자책점 3.01을 기록했다.
정규시즌의 아쉬움은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털어냈다. 5경기(4경기 선발)에 등판해 2승1패, 1세이브, 28⅓이닝, 평균자책점 1.91로 맹활약하며 그해 두산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었다.
강렬한 한 시즌을 보낸 플렉센은 두산은 물론,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NPB) 구단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플렉센은 시애틀 매리너스와 2년 475만 달러(약 70억원) 계약에 합의했고, 이닝에 따른 베스팅 옵션이 실행되면 2023년 800만 달러(약 118억원)를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시애틀에서 초반 2시즌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플렉센은 2021년 첫해 무려 14승을 거두고, 179⅔이닝을 던지면서 선발진의 상수가 됐다. KBO 역수출 성공 신화 최고 사례로 남을 것이란 말도 나왔다. 2022년에는 조금 부진할 때 불펜으로 전환되긴 했지만, 33경기, 137⅔이닝, 평균자책점 3.73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베스팅 옵션이 실행돼 2023년 800만 달러를 추가로 더 벌기도 했다.
하지만 2023년부터 올해까지 3시즌은 너무도 불안정했다. 2023년에는 시애틀에서 양도지명(DFA) 조치 되기 전까지 42이닝 평균자책점 7.71에 그쳤다. 메츠로 트레이드 됐으나 바로 다음 주에 방출되는 굴욕을 당했고, 콜로라도 로키스와 사인해 선발로 12경기를 뛰었다.
2024년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함께했다. 플렉센은 33경기(선발 30경기)에 등판해 160이닝을 던지고, 123탈삼진, 평균자책점 4.95를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는 듯했으나 무려 15패(3승)를 떠안았다. 그리고 올해 시카고 컵스로 이적했으나 선발 등판 기회는 단 한번에 불과했고, 불펜으로만 쓰이다 지난 8월 방출됐다.
컵스에서 방출된 뒤로 더는 플렉센을 찾는 메이저리그 팀이 없었다. 4개월 가까이 무적 신세로 있던 플렉센은 결국 다시 해외리그로 눈을 돌렸다. KBO에서는 플렉센의 보류권을 갖고 있는 두산이 나섰고, NPB 구단도 러브콜을 보냈다.
두산과는 신규 영입이 아닌 재계약의 개념이라 100만 달러(14억원) 상한액 제한은 없었지만, 플렉센은 총액 100만 달러 조건을 받아들이고 두산과 재결합을 확정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지난 5년 동안 1500만 달러(약 222억원) 이상 벌어들인 것을 고려하면 자존심 대신 커리어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냉정히 돈만 좇았다면 NPB 구단과 계약이 더 유리했을 것이다.
두산 관계자는 "플렉센은 최고 152㎞ 속구는 물론 커브, 커터 등 타자와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다양한 선발투수다. 2020년 포스트시즌 5경기에서 32탈삼진(단일 포스트시즌 역대 2위)을 기록한 구위가 여전한 것을 확인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두산은 올해 10승을 달성했던 잭로그와는 총액 110만 달러(약 16억원)에 재계약하며 원투펀치 구성을 마쳤다. 플렉센-잭로그 조합이 우려와 달리 최상의 조합이 될 수 있을지, 돌아온 플렉센의 위력은 여전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민경 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