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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재난 속 시 쓰기의 고통은 사치…그래도 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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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펴내
산불로 집 잃고 써 내려간 시…잿더미 속 '生의 의지' 포착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처음 그 집을 봤을 때, 그 집이 절벽 끝에서 저를 기다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이듬(56) 시인은 지금은 폐허가 돼버린 '그 집'에 대한 첫인상을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최근 시집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민음사)를 펴낸 김이듬을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사옥에서 만났다.
그 집이란 2년 전 경북 영덕에 귀촌해 마련한 시인의 보금자리를 말한다.
"제가 외딴곳을 좋아하다 보니까 도피처 같은 느낌도 있었고 (명의가) 제 이름으로 된 최초의 집이었죠. 글이 잘 써졌어요. 전망도 좋고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서."
하지만 내 집이 생겼단 부푼 마음도 잠시였다. 올해 3월 경북 지역을 덮친 산불은 그 집마저 삼켜버렸다.

◇ 올봄 경북지역 산불로 자택 전소…대피소서 시 써 내려가
불길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심지어 시인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주던 이웃집 할머니까지.
새 시집에서 시인은 불티와 재가 뒤섞여 흩날리는 어느 바닷가 마을에 서 있다. 역설적으로 계절은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고서 시가 절로 쓰인 것은 아니다.
시심(詩心) 대신 불안과 우울이 덮쳤고, 시인은 이를 다스리며 때로 차 안에서 때로 대피소에서 가까스로 시를 써 내려갔다.
그런 상황에서 시 쓰기란 '사치' 같았다고 시인은 고백했다.
당장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몸을 누일 곳도 없는 삶의 고통 앞에서 시 쓰기의 고통이란 어찌 보면 '엄살'이었다.
'힘내라', '극복할 수 있다'는 친구들의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여 삶은 극복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닌 것 같네 덮쳐오는 불길을 무너지고 쏟아지는 흙더미를 갈라지는 자신의 복부를 마주한다면 배부른 소리 경이로운 미학적 세계나 창조하게나"('생활과 시' 중)
재난 앞에서 시란 어쩌면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시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아이러니. 시의 쓸모란 이런 쓸모 없음을 자각하는 데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는 그의 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신이 나를 사랑해서 나를 이재민으로 만들어 주고 가설 건축물에 살게도 해 주시네요 시에 쓸 얘기가 쌀처럼 떨어질까 봐 파란만장 상상 초월 상황도 주시고요"('오지의 건축물' 중)
시적 아이러니에서 비롯되는 성찰은 김이듬이 도달한 시 세계의 한 경지로도 읽힌다.

◇ 비관과 절망 넘어 삶의 의지 포착…"소멸 통해 생성 보게 돼"
시인의 인식은 비관과 절망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낙담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대피소에서 가장 강렬한 삶의 의지를 포착해낸다.
"지금이 가장 불행한 시절일 것도 같은데/ 남은 날들이 별로 길 것 같지 않은데// 슬픈 농담인지/ 고맙다/ 행복하다고 한다/ 살아남은 목숨들은 생에 깊이 사무친다// 속절없이 사랑한다"('초봄 대피소' 중)
산불이 났을 당시 대피소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젊은 이가 시인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목숨은 건졌으니, 이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대피소의 어르신들로부터 위로받을 때마다 시인은 '물질'과 '밭일'을 하던 이웃들에게서 강인한 생명력을 배웠다. 또 그들의 삶이 어떤 시보다 시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시집의 편집을 맡은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한국 시단에서 지금 '김이듬'은 서사적 스토리텔링과 시적 비약이 가장 균형 있게 공존하는 이름"이라며 시인의 존재론적 좌표에 의미를 부여했다.
시인은 지금도 종종 허허벌판이 된 집터를 찾아가곤 한다.
폐허가 된 집터는 소멸을 통해 생성을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모든 것이 소멸했지만 여름이면 야생화가 만발하고 자연이 되살아나더라고요. '인간도 자연인데 나도 다시 소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재난 앞에서 누군가를 책망하는 대신 담담하게 현실을 바라본다.
이런 인식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중략) 미움이 없어 분노가 없어 관심과 눈치도 없이 봄이 지나갔다 지나고 보니 봄이었다"는 태도로 시인을 이끈다.
시인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운 것은 결국 시였다.
그는 기어코 잔해를 더듬어 말의 터를 찾고 기둥을 세워 새로운 언어의 집을 지었다.
그는 "시를 쓰면서 살아갈 용기와 가능성을 찾아내고자 했다"며 "오늘의 슬픔에 잠겨 미래를 망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시는 단순한 정신노동이 아니었다. 그는 "시를 쓰지 않으면 머리가 무겁고 몸이 아팠다. 시를 쓰고 나서야 육체가 한결 더 편안해졌다"고 떠올렸다.
다만 그는 인터뷰 내내 타인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의 시가 이웃의 슬픔을 소비하는 것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확대 해석에 대한 우려 섞인 마음에서다.
그럼에도 산불은 이번 시집이 나오게 된 부정할 수 없는 사건이고, 해석은 읽는 사람의 몫이다.

◇ 시력 20여년…"'시인 김이듬'으로 불리면 충분"
2001년 '포에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이듬은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등 다수의 시집을 냈다.
주로 방랑과 관능을 여성의 시선에서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언어로 표현해 주목받았다.
김춘수시문학상, 샤롯데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받았으며, '히스테리아'의 영미 번역본은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에 차지했다.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꾸준한 시작 활동을 펼친 그에겐 '페미니즘 시인', '관능의 시인' 등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에게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수많은 시인 중 한 명이어도 상관없어요. 그냥 '시인 김이듬'으로 남고 싶어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어떤 존재론적 규정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그에게 수식어란 거추장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이란 단어 한 마디로 족해 보인다.

kihun@yna.co.kr
<연합뉴스>